호화판 전집「붐」역경 딛고, 재기 노리는 문고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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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책을 사서 읽는 습성이 아직 길러져 있지 않은 우리 나라에서는 누구나 쉽게 구해볼 수 있는 문고판의 보급이 국민독서운동에 무엇보다도 앞서야할 것이다.
그러나 출판계는 그 동안 국민에게 독서습성을 길러주기 보다는 장식용의 호화판 전집 물에만 열을 쏟아왔다. 외판에만 의존하는 전집 물「붐」가운데서「페이퍼·백」의 문고판은 책으로도 여기지 않아 문고판 발행은 명맥만을 이어왔다.
전집 물「붐」으로 책은 필요이상으로 대형화했고 장식에만 비용을 많이 들여 정말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는 오히려 부담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 출판계에는 이에 대한 자체반성의 소리가 높아 국민 개 독 운동으로서의 문고판 발간에 힘을 기울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0년대 초 우리 나라에는 한때 문고판이 번창했었지만 내용이 너무 외국문학작품위주였고 활자가 작아 읽기 힘든 흠이 있었다.
그후에는 최근 50권을 내고 계획이 끝난 탐구당의「탐구신서」가 있었고 현재 계속중인 문고판은 69년에 시작, 지금까지 70권을 낸 을유문화사의「을 유 문고」뿐이다.
이밖에 시사영어 사는 일반문고와는 다른 영문문고를 연대로 20권 정도 발간할 계획이다.
문학작품과 사회과학 류 등을 내용으로 담을 이 문고는 학생층을 의한 영한대역본과 성인 층을 위해 주역을 붙인 영문 본으로 나누어 연차적으로 2백 권까지 낼 계획이다.
또 동화출판공사는 현재 장서 본으로 간행중인『세계의 문학대전 집』(전34권·10월 완 간)을 끝낸 다음 이의 보급만으로서 같은 내용의 문고판 등을 낼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문고판에 대한 인식이 모자라 책이라면 고급양장에「하드·커버」만 책인 줄 살아 왔다. 그러나 문고판은 값이 싸고 크기가 작아 항상 몸에 지닐 수 있어 독서용으로는 오히려 간편한 책이며 장식용에 앞서 보급돼야 하는 것이다.
출판사 측의 수지 면으로 보면 문고판의 발간이 어렵다는 것은 사실이다. 서점을 통한 판매가 잘 되지 않고 외판원도 이익이 적어 보급에 힘쓰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문고판은 시사적인 것이 아니고 언제나 읽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재고품의 관리도 문제가 되고 있다.
69년부터 3년간 70권이 간행된「을 유 문고」중에서 1회 배본된『인생 론』(톨스토이 저·김병철 역)『타고르 시선』(유 영 역)등은 이미 4판을 거듭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어 문고판의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을유문화사는 매회 배본되는 10권속에 국내외문학작품·고전·사회과학서·시집 등을 섞어 독자들이 골고루 읽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다른 출판물은 매년 한번씩 정가를 올리지만 항구적 사업인 문고판만은 아직 평균 2백80여면, 3백30원 정도를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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