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구상의 진취적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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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해설>
박정희 대통령의 이번 8·15경축사는 적십자사간의 남북회담이 열리게된 극적인 사태진전 속에서 발표된 만큼 그 지니는바 뜻은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말할 수 있다.
『평화통일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의 길』임을 다시 한번 천명한 박대통령은 북괴에 대해 무력과 폭력의 포기를 촉구하고 『그들이 진정으로 무력과 폭력을 포기하고 진지한 새 자세로 나온다면 평화통일을 위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통일문제에 대한 박대통령의 이와 같은 말은 기조에 있어 작년의 「8·15선언」과 같은 것이지만 무력포기의 선언만으로도 대화의 길을 틀 수 있다고 한말은 통일문제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한적십자사의「가족 찾기 운동」을 위한 남북회담제의를 작년8·15선언에서의「남북간의 인위적 장벽을 제거하기 위한 획기적 조치」의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이것이 북괴측이 무력포기에 대한 아무런 성의를 표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취해진 조치라는 점에서 박대통령의 통일문제에 대한 「어프로치」는 어느 때보다도 대담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박대통령이 지적했듯이 대한적십자사의 제의는 정치성을 띠지 않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제의였다. 그러나 이 「인도적 남북회담」이 정치문제 해결을 위한 대좌로 이르게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정치문제의 해결은 뒤로 미루고, 우선 실천가능한 인도적 문제부터 다루기 위해 제의된 것이 적십자사간의 남북회담이었다.
따라서 이번 「가족 찾기 운동」제의는 결코 대내외적인 선전용이 아니라 북괴측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적인 제의였으며,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북괴측을 자극치 않기 위한 처음으로 「북한」이란 말을 쓰는 세심한 배려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적십자사간의 남북회담이 정치회담으로 「에스컬레이트」될 가능성에 대비해서 단계적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통일을 비롯한 한국문제 해결에 대해 자주적으로 임하겠다는 결의를 천명하고 있다. 『한반도의 장래에 관한 문제는 열강이나 국제조류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주체적 노력과 자주적 결단에 있다』고 한말은 이 문제에 임하는 정부의 기본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박대통령은 특히 『우리는 지난날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만큼 국력을 배양했다』고 말함으로써 북괴와의 대결에 있어 어느 때보다도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수 있다는 자신을 표명했다.
박대통령은 또한 최근의 국제적인 긴장완화움직임에 따라 정치체제나 이념에 구애됨이 없이 우리에게 적대적이 아닌 나라들과 우호관계를 맺을 용의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정부의 대외정책의 진취적 자세를 나타냈다.
이번 경축사에서 가장 역점이 두어진 부분은 남북회담의 진전에 대비한 국내태세의 정비강화와 관련해서 「자유민주주의 민족주체세력」 형성을 제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국제적 추세인 긴장완화와 해빙기운을 틈타 일어나기 쉬운 정신자세의 해이나 성급한 감상적인 통일「무드」를 경계하면서 국론통일을 바탕으로 차분히 통일준비작업에 임하기 위한 의지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억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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