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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동맹국 정상 도청 곧 금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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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버락 오바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국(NSA)에 동맹국 정상 도청 중단을 명령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SA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우방국 정상의 휴대전화와 e메일을 엿본 사실이 드러나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리자 내놓은 궁여지책이다.

 NYT는 28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민주당 소속인 다이앤 페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회 위원장(캘리포니아)에게 이런 계획을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백악관이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기밀 유출 사건 이후로 NSA의 정보 수집 방법에 대한 광범위한 검토에 착수한 데 따른 것이다.

 페인스타인 의원은 성명을 내고 “나는 미국이 우방국 정상들의 전화나 e메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며 “정보위는 정보 수집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심각한 검토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인스타인 위원장은 스노든의 폭로 직후까지만 하더라도 미 행정부의 정보 수집은 테러를 막기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며 이를 옹호했었다. 하지만 NSA가 동맹국 정상들까지 도·감청 대상으로 삼은 사실을 알게 되자 입장을 바꿨다.

 NYT는 백악관이 이 같은 계획을 밝힌 것은 ‘규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둘렀던 NSA 활동에 중대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의 우방국’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메르켈 독일 총리를 도청해선 안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겠지만,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이집트에서 최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군부 지도자는 ‘우방국의 정상’으로 볼 수 있을지 애매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NSA는 동맹국의 정상이 미국에 적대적이거나 위협이 되는 행동을 했을 경우에 대비해 판단을 바꿀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 것이라고 NYT는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이 미국에 대한 동맹국들의 분노를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동맹국 정상 도청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속속 밝혀지는데도 “오바마는 몰랐다” “다른 나라들도 하는 첩보행위다”라는 해명만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NSA는 35개국 정상에 대한 감청을 해왔다고 가디언 등은 보도한 바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가 지난 주말 한국 대통령의 통화도 도청했는지 문의한 데 대해서도 아직 최종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우리 정부에 “입장을 이해한다”는 원론적 답변을 해왔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이는 (미국 측의) 최종 답변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실무자급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은 6월 주미 한국대사관 도청 의혹과 관련해 “문제제기와 관련한 동맹국들의 우려를 이해하고 미국 정부의 정보활동에 대한 재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사실상 시인했을 뿐이다.

유지혜·정원엽 기자

NYT "상원에 계획 전달"
외교적 궁지 몰리자 고육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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