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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기업정리의 「속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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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관리기업체정리작업이 하반기 중에 본격화 할 예정이다. 남덕우 재무부장관은 7일 은행관리기업체 중 10개는 해당관리은행이 독자적으로, 12개는 기업합리화위(위원장 산은총재)를 통해 연말까지 모두 22개 업체를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69년에 청와대 외자관리수석비서관실이 전반적인 부실기업체를 조사·정비조치를 단행한 이후 다시 대규모의 기업체정리가 시작되고있는 것이다. 부실기업정리 때와는 달리 공개적이 아니고 해당은행별로 은밀히 추진되고 있다는 점과, 부실기업을 은행관리기업으로 표현을 달리했을 뿐 커다란 「카테고리」로 보면 부실기업정리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 부실기업정리반이 해체된 후 정부안의 움직임은 경제기획원 외자관리실이 차관업체중심의 부실기업대책을 강구해 왔었고, 재무부는 연초에 은행관리기업체를 종합적으로 다룰 기업합리화위원회를 구성키로 했었다. 남재무가 밝힌 대상업체 22개는 그동안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하여 해당은행이 독자적으로 정리하거나 기업합리화위원회에 올려서 정리가 가능하다고 실무자들이 판단, 보고한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업체의 명단은 극비에 붙여지고 있으나 ▲22개 업체가 모두 관리기업체이고▲이미 성업공사에 담보물처분이 의뢰된 것을 포함하며▲산은관리기업이 12개, 시은관리기업이 10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정리방법은 지주관리, 인수관리업체, 전면관리업체는 기업자체를 공매하고 부분관리업체나 담보관리업체는 담보물을 처분하는 두 가지 방식이 예정되고있다.
은행관리업체의 발생유형으로 미루어 앞으로 정리문제가 큰 「이슈」로 등장할 것은 틀림없다. 관리기업체의 생성과정은 크게 정부의 현물출혈, 은행의 채권보전책, 융자에서 인수로 전환, 법원의 관리인지정에 따른 법정관리 등으로 구분될 수 있다.
현물출자에 따른 관리는 은행자본금증가를 위해 정부가 국영기업의 주식출자에 의한 것과 미리 국가기업의 민영화(불하)를 전제로 해서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불하목적이 아닌 석유공사주식의 대산은출자는 산은의 자본금강화를 위한 것이고 산은에 현물출자 했다가 이미 민영화한 광업제련공사, 요업 「센터」, 대한염업 등과 시은증자로 출자했던 해운공사 등이 좋은 예이다.
다음 채권보전을 위한 관리는 융자기업이 부실해져서 은행이 경영에 일부 또는 전반에 걸쳐 참여하는 「케이스」와 기업이 부실화하지 않더라도 채권규모가 커 관리에 착수하는 경우인데 대부분의 관리기업은 융자기업의 부실화로 시작되고 있다.
신진자동차, 기아산업 등이 오래 전부터 산은의 관리를 받고 있는 것은 부실화요인보다 채무규모가 크다는 것이 큰 원인이다.
융자에서 투자로의 전환은 기업의 금리부담을 덜어 육성해보자는 목적인데 이미 기업주가 바뀐 「유니언·셀로판」이나 아직도 산은관리중인 흥한화섬, 부실기업정비 때 떠맡은 조흥은행의 대성목재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밖에 법정관리는 은행채무뿐 아니라 사채까지 곁들여 기업이 도산될 위기에 섰을 때 회사정리법에 의거, 주채권은행이 법원으로부터 관리인지정을 받은 경우인데 외환은행의 풍한방직, 조은은행의 삼덕무역, 보해양조, 광림주조, 미창방적, 상업은행의 대한제지, 삼양전기, 화일산업, 한일은행의 동양고무산업, 대원석유, 대륙교통, 서울은행의 동양고무 등이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은행관리기업 발생요인 중 가장 비중이 큰 채권보전을 위한 관리형태 때문에 관리기업체 수는 항상 변하게 마련이다.
작년 말 현재 74개(부분관리 포함)였던 것이 금년 들어 공식적으로 정리된 것은 산은의 4개 지주관리업체 뿐인데 최근 현재는 62개로 줄었다.
이는 일부관리기업이 채무상환을 하거나 관리요인을 해결함으로써 관리에서 해제되거나 새로운 부실요인 발생으로 관리로 들어가는 등의 변동을 겪기 때문이다.
은행이 관리기업을 이처럼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금융의 체증 또는 경직화와 은행이 본연의 금융업무를 떠나 일반 기업경영에까지 참여해야하는 업무의 비대와 함께 금융자금의 효율성을 점점 저하시키게 된다. 더구나 채권보전을 위해 관리에 착수하게되면 담보물가치유지(기업의 도산방지)를 위해 뚜렷한 성과도 없이 자금이 누진적으로 눌려 들어가는 「케이스」까지 흔히 나타난다. 이 때문에 은행관리기업체를 정리해야겠다는 중요한 정책적 결단이 내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관리기업의 발생은 비단 은행하나의 잘못이 아니고 산업정책, 사업타당성의 엉성한 검토, 기업주의책임, 하향식융자 등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채권을 정리하는 책임은 은행에 있는 만큼 몇 가지 전제와 제약이 있다.
은행이 손해를 보지 않고 정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 부실로 정리되는 업체를 누가 은행이 바라는 값으로 살 것이냐 하는 문제, 그나마 경영성적이 좋은 업체는 육성까지의 금융특혜에 대하여 불하과정의 특혜까지 개입되지 않겠느냐 하는 문제, 담보가 기업의 한 「파트」일 때의 정리문제, 특히 채권은행이 여러 은행일 경우 기업합리화위가 조정한다지만 이해관계은행의 담보권우선 문제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아직 대상업체별로 정리방법이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앞으로 정리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종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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