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명의와 돌팔이|컷·김은달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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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명의와 돌팔이 의사-.
어떤 의사가 명의고 어떤 의사가 돌팔이냐를 구별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명의도 의학을 공부하던 때는 돌팔이 의사였을 것이고 훌륭한 명의도 재수 없이 중대한 오진을 한 까닭에 환자로부터 돌팔이라는 모욕을 받을 수도 있다. 의사 면허도 없는 주제에 의사 간판을 내걸고 있는 자들은 돌팔이 의라기보다는 차라리 살인의 라고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논외로 해두자. 아뭏든 임상의라면 누구든지 한번쯤은 명의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볼 것이다.
또한 의사라면 아무리 실력이 없어도 스스로를 돌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 틀림없다.
「히포크라테스」 (그리스) 「갈레노스」 (로마) 편작 (중국) 화타 (중국) 언파 (인도) 등 오늘날까지 이름이 전해져 오는 명의가 적지 않게 있다. 중한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명의한테 진료를 받아보고 싶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한정 없이 전문화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명의가 있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올법하다.
외국에는 『명의라는 말이 있는 한 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의사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방사선 의학 연구 소장 이장규 박사 (내과) 같은 사람은 『명의란 옛날 전제주의 시대의 영웅 같은 존재이므로 현대 의학에선 명의가 있을 수 없다』고 아예 잘라서 부정해 버린다. 명의보다 의학의 흐름에 뒤지지 않기 위해 매월 내외전문 잡지를 최소 1권씩 읽을 정도로 공부를 쉬지 않고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양의가 바람직스럽다고 이 박사는 말하고 있다. 한편 명의의 정의에 너무 엄격하게 구애될 것이 없이 명의를 인정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꽤 있다. 서울대 부속병원 산부인과 주임 교수 나건영 박사는 『진단과 치료가 뛰어나다는 평판이 높은 유명한 의사가 명의』이므로 우리 나라에도 많이 있다고 본다 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장 임의선 박사는 『한 두 가지 증상만 보고 재빨리 병명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증상을 「체크」해서 환자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종합적인 판단아래 치료의 길을 찾는 의사가 바로 명의』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가톨릭」대 성모병원 외과교수 이용각 박사는 『수술을 안하고도 치료하는 길을 제일 많이 아는 의사가 외과에선 명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이 박사는 수술 기술이 뛰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대학을 나온지 26년이고 우리 나라 최초 명의 신장 이식 성공자인 그도 이제야 개복 뒤에 내장이 술술 손에 잡혀 나오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 최다의 심장 이식 수술 기록을 갖고 있고 「메스」를 심장에 댈 때 피도 안 난다는 미국 「벨라」 대학의 「덴튼·쿨리」 박사야말로 명의라고 이 박사는 예까지 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명의라도 오진은 하게 마련이고 아무리 명의라도 수술은 성공인데 환자는 죽었다는 식의 실패를 저지를 수가 있다.
일본에서 명의로 이름 높은 충중중웅 박사 (현재 도라노몽 병원장)가 동경 대학을 정년 퇴임 할 때 재직시의 오진률이 14·2%라고 발표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바가 있었다 한다. 일반은 충중 박사 같은 명의가 14·2%나 오진을 한데 놀랐고, 의학계는 너무나 오진율이 낮아서 놀랐다는 것.
최근에 서울대 부속병원 내과에서 지난 5년간의 오진율이 29·7%라고 발표된 것에 비추면 우리 나라 의사의 오진율이 얼마나 될 것이냐를 미루어 알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명의와 돌팔이 의사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옛날의 명의라도 항생 물질을 쓸 줄 아는 오늘날의 돌팔이 의사한테는 어림도 없을 것이 아닌가. 의사는 명의가 되도록 노력하면 더 좋고 이장규 박사 말대로 양의는 되도록 애써야겠지만 한편 의사들은 한결같이 양 환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의사를 믿지 않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병을 더치는 환자, 한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요령부득의 질문을 퍼붓는 환자가 양 환자가 아닌 것은 물론인데 그들이 공연히 돌팔이 의사를 만들고 다닌다고 많은 의사가 한탄을 하고 있었다. <이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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