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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빼고 거실 넓히니 … 낯선 손님들 모여 친구 되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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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김지형(왼쪽)·이진욱 대표가 서울 연남동의 ‘타임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하고 있다. 2010년 말 오픈 이래 이들은 “게스트하우스의 핵심은 ‘게스트’”라는 운영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영빈관(迎賓館), 여인숙, 노숙자 쉼터, 외국인 노동자들의 숙소….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의 변천사다. 신문에 처음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이 등장한 1960~80년대, 이 단어는 정부나 기업들이 초청한 외국인 손님들을 위한 숙소를 의미했다. 90년대 들어선 저렴한 숙소의 대명사가 됐다. 노숙인을 위한 쉼터를 의미하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증한 2000년대 초반엔 이들 사이의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위험한’ 거주지를 상징했다.

 ‘외국인 관광객 도시민박업소’라는 지금 개념의 게스트하우스가 등장한 건 길어야 2~3년 전이다. 서울시가 이들 업소의 등록을 받은 것도 지난해부터다. 그렇게 역사는 짧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8월 말 기준으로 서울 시내에만 329개 업소가 등록돼 있다. 등록하지 않은 게스트하우스까지 합치면 1000개는 족히 넘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시대의 단면이다.

 게스트하우스의 새싹이 북촌 한옥마을이었다면, 꽃은 홍익대 일대에서 피웠다. 홍대는 쇼핑·놀거리·먹거리·볼거리·즐길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역 중 하나다. 공항철도 개통으로 접근성도 좋아졌다. 홍대 주변의 “상수동·합정동·연남동·서교동 일대의 웬만한 단독주택은 술집·밥집·카페 아니면 게스트하우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타임게스트하우스를 다녀간 전 세계인들이 남긴 즉석 사진. 거실 벽면에 걸려 있다(사진 위), 올 초 일본에서 온 9명의 단체 손님이 남기고 간 티셔츠. 각자의 감사 인사가 쓰여 있다(사진 아래).

 ‘블루오션’에서 2년여 만에 ‘레드오션’으로 변한 홍대 게스트하우스 시장에서 2010년 말 창업, 경쟁자들의 등장에도 사세를 넓혀가고 있는 곳이 연남동에 위치한 ‘타임게스트하우스’다. 인터넷 서비스 기획(SK커뮤니케이션즈)과 대형 여행사(하나투어)에서 일했던, 해외 여행을 즐겨 했던 두 명의 친구가 의기투합해 차렸다. 김지형(36)·이진욱(36) 공동 대표다. 이들은 올해 홍대 상권 중심가에 2호점인 ‘펀펀 게스트하우스’도 오픈했다. 부산 해운대에는 운영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상호명을 같이 쓰는 프랜차이즈 개념의 게스트하우스도 문을 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핵심은 ‘게스트’입니다. 여행 와서 혼자 편하게 쉬다 가겠다면 돈이 있으면 호텔, 없으면 모텔을 가면 됩니다. 뭐하러 불편하게 같이 방 쓰고 화장실 쓰겠어요. 낯선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거고,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김 대표)

 홍대 상권의 인기에 임대료는 비싸지고 경쟁자들은 우후죽순 생겨난다. 현상유지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2호점을 낼 정도로 잘 나가는 비결은 최신 시설이나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창업 전 이들 자체가 해외 배낭여행을 많이 다녔다. 어떤 곳이 편했고, 어떤 곳을 다시 찾고 싶나를 떠올리면 시설이나 가격보다는 사람이 먼저였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어떤 게스트를 만났느냐에 따라 여행에 대한 기억 자체가 달라졌다.

 게스트들끼리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들이 고심한 부분은 거실이다. 내 집처럼 편한 곳이면서 내 집과는 다른 낯섦이 설렘을 줄 수 있는, 그런 공동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 그래서 이들이 맨 처음 이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한 일이 거실 벽에 전 세계의 상징 건축물을 담은 벽화 그리기였다. 구조는 집인데 벽에 대형 벽화가 있으니 집 같지는 않고, 벽화에는 만리장성·스핑크스·자유의 여신상 등과 같은 나라별 상징 건축물이 있으니 그걸 찾는 재미가 있고…. 그렇게 거실로 게스트들이 모여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벽화는 타임게스트하우스의 명물이 됐다.

 대신 다른 리모델링은 최소로 했다. 집 구조를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덕분에 초기 투자비용은 3000만원 선에서 막을 수 있었다. 인테리어 업자는 “돈 안 되는 거실 같은 공간을 이렇게 크게 둬서 뭐하느냐”며 “지금 돈 들이는 거 아깝다 생각 말고 거실 줄여 방 하나 더 만들고 거기 2층 침대 2개 놓아라”고 충고했다. 김 대표는 “돈을 아끼려는 게 아니라 공동 공간인 거실을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며 “지금도 어린 친구들이 뭘 모르고 공간을 놀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넓은 거실은 손님들이 우리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이 대표가 거실에 집착(?)하는 것은 게스트들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인 거실이 비수기 손님을 유치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홍대에 게스트하우스가 많다고들 하지만 성수기에는 손님도 그만큼 많기 때문에 빈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문제는 비수기에 얼마나 손님을 유치하느냐인데, 돈벌이에만 신경 쓰는 게스트하우스는 손님들이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에서 확인한 타임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규모의 게스트하우스 임대료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500만원 수준이다. 침대 하나당 일일 숙박료가 2만~4만원, 침대가 20여 개 있으니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면 월 2000만원 안팎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그러나 비수기에는 침대의 절반도 채우기 어렵다. 비수기라고 월 임대료를 깎아주지 않는다. 이런 때 임대료에 전기료·수도요금 및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주고 나면 주인은 그야말로 노력봉사하는 꼴밖에 안 된다.

 반면 타임게스트하우스는 월 매출이 1800만원 수준으로 꾸준하다. 게스트들에게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준 덕이다. 김·이 대표들도 바쁘지 않을 땐 게스트들과 어울린다. 김 대표는 “마트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근처 맛집 같이 가지 않을래, 야구 보러 가지 않겠느냐는 등 게스트들이 현지인만 아는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주인장과 이렇게 어울려 놀다 보면 게스트들끼리 친해져서 다음 날 낮엔 자기들끼리 놀러 나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게스트들이 특별한 경험을 하면 이들은 다음에도 이곳을 찾는다. 25일 만난 일본에서 온 모에코 요네야마(21)는 “2011년 4월 이곳에서 묵었는데 시설도 깨끗하고 무엇보다 친절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또 찾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게스트들이 이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인터넷에 올리면, 그걸 보고 다른 이들도 타임게스트하우스를 찾게 된다. ‘입소문’ 마케팅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입소문을 효과적으로 전파할 온라인 마케팅 전략도 타임게스트하우스에는 있다. 대기업에서 10년 가까이 인터넷 기획 일을 한 김 대표는 “인터넷에 국경이 없다고 온라인 마케팅 방법이 나라마다 같은 것은 아니다”며 “사용자가 11억 명이나 된다고 해서 중국에서는 접근 자체가 안 되는 페이스북을 이용해 중국 손님을 유치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을 유치하기 위해선 인기 여행 예약 사이트에, 블로거의 글은 믿지 않는 홍콩인들을 잡기 위해선 유력 잡지에 게스트하우스가 소개되도록 하는 등의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써야 한다.

글=고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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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홍대앞 '타임게스트하우스' 비수기에도 빈방 없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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