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에의 험로…하반기 경제 (4)|징세 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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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음성 세원 발굴과 과세 표준 현실화라는 2대 명제를 내걸고 66년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정부의 세수 증대 노력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5년만에 7배로 늘어난 내국세 규모가 이를 단적으로 입증해 준다. 65년에 4백20억원에 불과했던 내국세수가 66년에 7백억원으로 66·5%나 급증했고 그 후 해마다 30∼50%의 증가 「템포」를 지속, 70년에는 2천8백69억원에 이르렀고 올해의 목표는 3천6백22억원 (전년비 26·2%증가) .
GNP와 비교해 본 내국세 부담율은 65년의 5·2%에서 70년에 11·1%로 갑절 이상이 늘어났다.
그 동안 팽창 일로의 재정 수요와 감소 추세의 외원을 「커버」하기 위해 조세 증수는 일단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경제 성장을 앞지르는 세수 증가를 납세자가 무한정 감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 같다. 정부의 철저한 징세 활동으로 세수 증대의 「프런티어」는 크게 줄어들었다. 세수 「드라이브」를 전개한 초기에 비해 최근의 조세 증가율이 반감한 것은 세원 개발이 그 나름의 한계에 접근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세수 증대를 위한 정부의 조세 정책이 낳은 가장 큰 문제는「공평성의 결여」로 지적된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수직적인 불공평, 동일 소득 계층간의 수평적인 불공평, 탈세를 하는 자와 못하는 자 간의 절대적 불공평이 심화됐다. 이 같은 현상은 첫째 세법상 각 세목의 세율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과, 둘째 탈세를 아무렇지도 않은 것으로 보아 넘기는 우리 사회의 조세 「모럴」에 기인한다. 법인과 개인 기업가, 기업가와 근로 소득자의 세 부담 수준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은 항상 지적돼 온 사실이다.
세번째 요인은 정부 조사 결정이라는 이름의 인정 과세. 납세자가 성실하지 못해 그들의 소득 신고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세액을 추계 결정한다는 인정 과세 제도는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객관적이 아닌 세무 공무원의 주관적 재량 또는 일률적인 지표에 따라 집행됨으로써 불공평한 부담을 가져오고 있다. 인정 과세의 주요 기준인 소득 표준율은 「제2의 세율」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서 부담 수준의 산출에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것인데도 소득 표준율은 세무 당국의 독자적 결정 사항에 속한다. 그래서 세무당국의 일방적인 소득 표준율 결정은 조세 법률주의 위반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종전에는 개인 사업자에게만 소득 표준율을 적용했으나 올해부터는 법인에게도 적용키로 하고 새로운 법인 소득 기준율을 만들었다. 국세청은 소득 신고 실적이 저조한 6천여 법인에 대해 벌이던 법인 특별 세무 조사와 세무 사찰을 일시 중단하고 재수정 신고 기간을 설정하면서 법인 소득 기준율의 85% 수준 이상으로 소득 신고를 하면 세무 조사와 사찰을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는 이것이 각 업종의 우수 기업을 기준으로 한 지표라고 주장, 소득 기준율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세무 당국의 인정 과세 강행과 이에 대한 업계의 반발이 해소되기 위해서는 납세 풍토의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전국 50만 개인 사업자 가운데 성실 기장과 신고를 하는 업자는 20% 내외, 법인의 경우는 작년 말에 사업 연도가 끝난 5천3백99개 중 0·5%인 29개가 성실 법인으로 선정됐을 뿐이다. 이를테면 「탈세」가 『가장 유능한 경영』으로 통하는 납세 풍토에서 인정 과세를 완전히 불식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세무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낳게 하는 소지도 바로 이러한 인정 과세에 있다. 정부는 걸핏하면 세무 공무원의 기강 쇄신·정풍과 신풍 「캠페인」을 벌이려 들지만 인정 과세라는 비합리적인 제도가 존재하는 한, 그것에 밀착된 세무 공무원 부정은 근절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와 아울러 세정의 방향을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 왜곡시키는 것으로서 잡다한 세무 조사가 있다. 정확한 세원을 포착하기 위해 세원을 추적하는 본래적인 세무 조사가 아닌, 물가앙등을 행정적으로 억누르기 위한 위협적인 세무 조사가 문제가 된다.
물가의 움직임을 시장 제력에 방임할 것인가 통제를 할 것인가의 문제는 정책 결정자의 가치 판단에 속하겠지만 물가 통제의 수단으로 세무 조사를 남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정력의 구사라기보다 행정력에 의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조세의 제1차적인 목적이 국고 수입 확보에 있고 부차적으로는 소득 재분배, 경기 회복 등의 경제 정책적 목적에 활용되기도 하나 이는 세법상의 지원, 면세, 고 세율 (소비 억제를 위한) 등에 의존하는 것이 통례이다. 우리 나라의 세무 조사와 같은 행정의 실력 행사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이다.
이같이 무리한 세무 조사를 강행한 결과 물가 억제에 얼마나 효과를 거두었고 소위 「폭리 업체」로부터 얼마만큼의 초과 이윤을 국민이 환수했느냐는 데 대해 자신 있는 답변과 숫자를 제시하는 당국자는 아무도 없다. 수년간 계속되고 있는 「폭리 및 물가 단속」을 위한 세무 조사의 주무 관청인 국세청 스스로도 이 방법의 한계성을 자각, 회의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지금 세정 당국은 수년이래 최대 규모의 세제 개혁 작업을 추진중이다. 이 작업 과정에서 세목의 존폐나 세율의 조정도 중요하지만 현 단계에서 보다 시급을 요하는 것은 징세 기술을 개선, 세법 외적 요인에 의한 세 부담 불공평화의 소지를 없애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박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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