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먹거리 바른 식생활] 정으로 간 맞춘 향토음식 투박하긴 해도 맛은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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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지난 한글날에 잘못된 언어 관습의 하나로 이 말이 지적됐다. 식당의 여성 종업원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것은 언어 예절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모는 어머니의 여형제를 이르는 말이니 이름도 성도 모르는 여종업원을 이렇게 부르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식당 여종업원을 두고 이모라 부르게 된 연유를 생각하면 예절에 맞지 않는다고 굳이 내치자 할 것은 아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입니다. 과거 4000여 년 동안의 역사를 돌아볼 때 어느 때에 비록 하루라도 농업을 아니 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역사의 첫머리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혀 농민의 나라인 것은 감출 수 없는 사실입니다.”

윤봉길 의사가 지은 『농민독본』의 농민 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농민의 나라! 한반도의 주인은 늘 농민이었다. 인구로도 가장 많았고, 지배계급이라 뻐기었던 이들도 결국은 농민이 땀으로 거둔 음식을 먹고 살았다. 1960년대 근대화 이후 이 나라는 더 이상 농민의 나라가 될 수 없었다. 농민은 한순간에 농촌을 떠나 도시의 노동자가 되었다. 농민은 자신이 가꾼 농산물로 음식을 해서 먹으나 노동자는 노동을 팔아 먹거리를 사서 먹는다. 그러니까 농민으로 살 때는 하지 않은 일을 노동자가 되어서는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식당에서 끼니를 때우는 일이다. 늘 집에서 먹던 밥을 식당에서 먹으려니 노동자가 된 농민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식당의 주인이며 종업원들도 한때는 농민이었고, 밥을 파는 일 역시 이들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다.

서로 음식을 사고파는 일에 대한 어색함을 줄이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고, “이모” 하는 호칭은 그렇게 하여 탄생했다. 예전에 농촌에서 살던 때와 같이 한 가족처럼 음식을 만들어서 먹고 있다는 상상의 위무를 이모라는 호칭에서 얻으려 하는 것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공동체적 삶에 대한 애착을 두고 언어 예절 운운하며 내치자 하는 것은 야박한 일이다.

한국에서 향토음식에 대한 관심이 급등한 시기는 1980년대다. 농민이었던 노동자가 도시에서 제법 터를 잡고 조금은 넉넉한 생활을 누리기 시작할 무렵이다. 식당의 ‘이모’가 음식을 맛나게 해주고 살갑게 대하여도 그 옛날 농촌에서 먹었던 그 음식 그대로가 아니라는 것에 조금씩 불만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예전 살던 그곳의 음식을 먹자는 욕구가 만들어졌다. 그러니 향토음식에 대한 욕구는 도시화가 깊을수록 더욱 강렬해질 것이다.

향토음식은 조리적 완성도나 세련미 등에서 보자면 그렇게 높은 수준에 있지 못하다. 도시에는 이미 전문적인 조리사들이 온갖 기교를 부리는 음식으로 넘쳐난다. 식재료 역시 상당한 수준의 것으로 마련하는 식당이 많다. 이 맛난 도시의 음식에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으니 수천 년 동안 우리의 몸 속에 각인된 공동체 정서다. “이모”라는 말로도 도저히 채워질 수 없는.

농협에서 지정한 향토음식마을이 있다. 지리적 특성이 강한 식재료로 옛 방식의 조리법대로 음식을 한다. 세련되지도 못하고 완성도도 떨어지지만 이들 마을에서는 음식 하나만 달랑 먹이지는 않는다.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모 고모 삼촌 조카 당숙이었던 그 시절의 정서로 음식을 체험하게 한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다. 정으로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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