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제장관 간담회 '총천연색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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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일 열린 새 정부 첫 경제장관 간담회에 참석한 장관들의 색깔은 '총천연색'이었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불확실성이 크고 경기 둔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을 맡게 돼 밤잠을 설칠 정도로 마음이 무겁다"며 "여러 부처의 지원을 받아서 새 정부의 정책을 착실히 추진하겠다"고 인사말을 했다.

하지만 다른 부처 장관들은 제각각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이 때문에 이날 간담회가 '성장'논리가 주도했던 경제 정책의 방향에 질적인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 부총리가 전권을 쥐다시피하면서 정책을 조정하면 다른 장관들은 어쩔 수 없이 따라왔던 관행이 상당히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 부처 장관들은 모두(冒頭) 발언에서 자기 부처의 역할을 강하게 드러내 향후 경제팀의 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임을 보여줬다.

줄곧 농민운동을 해오다 농림부 장관에 임명된 김영진 장관은 예상대로 농민 편에 선 경제정책을 강력히 주문했다. 金장관은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 협상 등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우루과이라운드(UR) 당시에 버금가는 어려운 상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농민 문제가 경제적 약자의 상징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더 이상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올곧게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밀어달라"고 말했다.

한명숙 환경부 장관은 "모든 정책에 환경문제가 고려되는 정책이 입안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 환경부가 높은 목소리를 유지할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이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온건하면서도 뼈있는 말로 시작했다. 경제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한 金부총리의 발언에 대해 權장관은 "부총리께서도 말씀하셨듯 우리 경제가 순탄치 않지만, 동시에 노동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입장에 있다"며 "근로자의 입장을 잘 살펴서 균형잡힌 경제정책이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김화중 보건복지부 장관도 "우리 부의 중점 사업 중 하나가 보육사업"이라며 "보육사업을 잘 발전시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고,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몇몇 장관들은 이날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친밀감을 나타내며 "우리 부처는 돈 달라고 할 것밖에 없으니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朴장관은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냈다.

그는 "한정된 자원을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배분하다 보니 우선순위를 정해서 할 수밖에 없다"고 못박으면서 "저는 악역을 계속 할 수밖에 없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정책 수뇌부가 될 청와대 정책실의 권오규 정책수석은 "장관들을 잘 서포트하겠다"고 했다. 權수석은 경제수석 등 4개 수석의 폐지로 비경제부처 일까지 정책실이 맡게 됐다며 정책실의 기능을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정책실이 각 부처 일에 직접 간여하지는 않는다"며 "정책실은 정책 상황을 파악하고, 우선순위가 높은 전략 과제와 대통령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은 '책임총리'론을 들고 나왔다. 李실장은 "국무총리가 책임총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위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하고, "총리 보필에 허점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직전에 재경부 차관을 지낸 윤진식 산자부 장관은 "유가가 급등하고, 2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보이고 있다"며 "정책적인 협조와 조정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金부총리를 거들었다.

한편 사퇴 압력을 간접적으로 받고 있는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금융.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다른 부처와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지원하겠다"고,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시장의 힘으로, 시장 자율적으로 기업 경쟁력이 강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金부총리는 "이제 더 이상 내수 중심 정책을 쓸 수 없고, 통계기술적으로 보면 올 4월부터 수출증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적극 펴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상렬 기자

<사진설명>
새 정부의 경제팀이 3일 첫 경제장관간담회를 가졌다. 왼쪽부터 권기홍 노동·이창동 문광·윤진식 산자·박호군 과기장관·권오규 청와대 정책수석·김화중 보복장관·김진표 경제부총리·한명숙 환경·김영진 농림·최종찬 건교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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