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아주>(4)현장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악조건과 싸우는 원조어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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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수에 있지요. 아이 둘에 시부모까지 모시고 있으니까 무척 고생스러울 겁니다. 한 달에 1만3백원 가지고는 아무래도….』 화제가 봉급얘기로 옮겨가자 이재천씨(35·공성 소속)의 얼굴은 금새 침울해 진다. 5식구에 월1만3백원-. 아무리 가늠해봐도 끼니의 계산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 서글프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황금을 낚는 뱃사람」,「외화획득의 기수」등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참으로 현란하다. 그리고 이러한 찬사에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이들은 황금을 낚고 외화를 벌어들였다. 다만 낚아 올린 황금이 엉뚱한 호주머니 속으로 잠적했을 뿐인 것이다.
이 「잠적」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원양 어선단 특유의 고용계약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른바 「보합제」로 통하는 이 제도는 광산의 덕대제와 비슷한 것. 즉 선주는 배 숫자만큼의 선장을 고용하고 나머지 일체는 선장에게 맡겨버리는 제도이다.
현재(4월말) 「아프리카」 서안에는 7개 회사에서 62척의 배와 1천7맥 여명의 어부들을 보내고 있지만 회사에 직접 고용된 사람은 62명과 선장들뿐이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1천7백 여명의 어부들은 모두『선장에게 고용된』사람들. 이것은 국영인 수공소속(14척, 5백명)어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고용관계는 급료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즉 선주와 선장은 보통3·7제(수공은35대65로 좀 나은 편이지만 개인 회사 중에는 25대75의 악랄한 착취형도 있다)로 나눠먹는 것이다. 따라서 선원들의 봉급은 선장이 받는 금 이익금의 3할가운데서 쪼개내는 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 어선단과 같은 바다에서 일하고있는 자유중국 및 일본 원양어선들도 이 보합제를 쓰고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같은 보합제라도 그 분배비율은 엄청나게 다르다. 일본어선의 경우 50대50, 자유중국도 60대40인 것이다. 일본이나 자유중국어부들의 수입이 우리어부들의 5∼3배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이와 같은 수입의 격차는 어부들의 생활일반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가나」의 「테마」항에서 우리어부들을 찾아 나섰을 때였다. 3∼6개월만의 육상생활이니까 으례 부둣가의 간역「레스토랑」이나「바」에서 찾는 쪽이 빠를 것으로 지례 짐작한 것이 실수였다.
갈색살갗의 어부들은 가는 곳마다 득실거렸지만 모두가 일본인이거나 중국인들 뿐. 몇 집을 돌았어도 우리 어부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어부들을 찾아낸 곳은 부두 끝 쪽에 붙어있는 선창가. 그물 손질을 위해 지어놓은 판자 가옥의 그늘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크루드」(「바나나」로 빚은 싸구려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레스토랑」과 판자가옥, 맥주와「크루드」…. 가슴이 억색해 왔던 것은 적도하의 열기 탓이었을까.
그러나 어부들의 형편없는 봉급이 선장의 경우에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선 분배비율이 일반어부의 4∼6배가되는데다가 선주로부터 별도의「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배려」중에는 처음부터 묵계가 되어있는 경우와 목표 초과액에 대한 상여금 형식 등 두 가지가있다. 어쨌든 30개월 계약기간만 끝내면 여간 운이 나쁘지 않는 한 3∼5백 만원 정도의 돈이 돌아오게끔 되어있다.
반면에 어부들에게 돌아가는 몫(30개월 통틀어서)은60∼1백 만원 선. 이 가운데서 30개월 동안 월1만∼1만5천원씩 가족에게 지급한 돈을 공제하게 되므로 손에 들어오는 돈은 30∼50만원이 고작이다. 말하자면 재주는 어부들이 부리고 돈은 선주와 선장이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주의「재주넘기」에도 많은 헛점이 발견된다. 도대체 아무리 잡아줘도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원양어선의 거의 모두가 차관선박이거나 전셋 배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한데 상환조건 속에 「현물상환」을 포함시켰기 때문에 잡은 참치를 차관선(흑은 대여주)이 정해준 회사에만 팔게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터무니없는 값을 매겨도 울며 겨자 먹기로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수공만은 이러한 멍에를 쓰고있지 않으므로 국제가격대로 팔아 넘기고 있다.
수공소속 박일규 선장(38)은 지난해 7월 자기가 t당 5백20「달러」씩에 넘긴 「피가이」(참치중 중질)를 K사 소속 P선장이 3백20「달러」에 팔고있더라고 전했다.
맨주먹으로 회사를 차리기 위해 선주 쪽이 저지른 실책은 이것뿐이 아니다. 예컨대 일체의 부속품과 소모품을 차관선(대부분이 일본)의 동계회사로부터 공급받지만 그 값이 또한 엉망인 것이다.
이러한 『경영에서 빚어진 주름살』이 최종점으로 몰리는 곳은 인건비 부문. 우리 어부들이 일본이나 중국어부들보다 훨씬 나은 성적을 올리면서도(「테마」항에서 만난 중국인 어부 진충씨의 말) 수입은 20∼30%밖에 안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횡포와 실책의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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