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제도 개혁 제의| 「길재호 발언」의 여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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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양조장이나 가지고 있으면서 돈이나 써야 국회의원이 되고…능력은 있지만 돈 없는 신인은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가 힘들다』-.
5·25 총선 막바지에서 선거 제도 개혁론을 들고 나온 길재호 공화당 사무 총장의 「진의」 는 어디 있든지간에 발언의 출발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다.
부정 부패를 없애자고 말하고 있지만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돈 쓰는 선거, 타락 선거를 하게 되니 부패의 악순환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희 공화당 총재의 국회의원 입후보자 지원 유세를 수행한 길 총장은 지난 8일 수행 기자들과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면서 선거 제도 개혁론을 꺼냈으며 19일에는 서울에서 거듭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설명한 개정 연구의 방향은 ①현행 소선거구제를 대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로 고치는 문제 ②선거 운동에 TV·「라디오」를 이용하는 폭을 넓히는 문제 ③선거 비용의 문제 등이다. 선거가 끝나는 대로 당내에 이를 연구하기 위한 상설 기구를 설치하고 8대 국회가 구성되면 초당 협의체를 만들어 전반기 안에 고쳐 놓도록 하자는 것이고 필요하면 정당법도 고치자는 제의가 첨부돼 있다.
길 총장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정계 개편이나 또 다른 헌법 개정과는 곧 관련을 짓기 어렵다.
67년과 71년에 걸쳐 여당의 선거 참모를 맡았던 그가 선거 제도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시정책을 제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
그러나 길 총장의 발언은 그렇게 단순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특히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는 길 총장의 발언을 받아 『공화당이 총선 후 거국 내각을 형성하고 야당 일부를 흡수하는 등 정계 개편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씨는 길 총장의 발언을 개헌으로까지 연결시켜 『공화당은 8대 국회에서 장기 집권을 위해 또다시 개헌을 할 것』이라면서 『이러한 개헌의 방향은 ①남북 통일 때까지 박 대통령이 계속 집권하기 위한 대만식 총통제나 ②내각 책임제의 개헌을 통해 「프랑스」의 「드골」식으로 영구 집권을 꾀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대중씨 외에도 신민당 간부들은 길재호 발언에 몹시 과민하다. 신민당 사람들은 그 발언을 『단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이유로 이런 것을 들고 있다.
첫째, 선거가 한창일 때에 선거 후의 선거 제도 개혁 문제를 꺼내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자연스럽다. 둘째, 박 대통령은 야당이 정권을 인수할 수 있도륵 육성하겠다고 했고 유능한 인사를 기용하겠다고 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최소한의 진출을 봉쇄하려는 것을 보면 야당 육성의 의사가 없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 선거 중에 박 대통령은 민족 주체 세력의 결성을 제창했는데 그것은 정당 세력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인지 모호하다. 넷째, 선거 제도 개혁이 논의되면 선거구 이해에 읽힌 정치인, 특히 야당 사람들이 동요하여 야당의 분열이 촉구되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등이다.
이런 상황을 들어 신민당은 길재호 발언을 정계 개편이나 개헌의 신호탄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길 총장은 펄쩍 뛰었다.
선거의 타락이나 부정을 막는 방법을 연구하자는 것을 왜 순수히 받아들이지 않느냐고 격앙했다.
5·25 총선이 끝나면 공화당은 바로 원내 요직을 인선해야 하고 거기에 정부 및 당요직의 개편이 뒤따를 것이다. 이 인사 개편에 따라 공화당의 내부 세력이 새로 「픽스」되고 앞으로의 정치 방향이 조준될 것이다. 또 신민당도 새로운 당권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며 소수의 군소 정당 세력을 합쳐 야당 진영의 개편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혹은 그 전후에 선거 제도 개혁이 본격적으로 거론된다면 그 거론이 선거 제도 문제에만 머무르게 되기는 힘들다.
선거의 타락이나 선거 부정을 막도륵 해야한다는 데에는 여야당 사람이 모두 동감이다. 언제 어떻게 논의 되든간에 일단 논의는 될 것인데 선거 제도가 법적인 측면보다 정치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에 길재호 발언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이냐는 것은 선거 후의 여야당 내부 기상에 많이 좌우된다고 봐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으례 후유증이 따랐고 후유증은 선거법 개정으로 아물어지곤 했다.
이들 선거법 개정론은 물론 야당측 제의에 의했던 것. 그러나 이번 길재호 발언은 그 선 후를 바꾸어 여당이 먼저 말을 꺼낸 셈이며, 그 면에서 본다면 후유증 논란을 앞질러 봉쇄해버린다는 계산이 있었을지 모른다. <심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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