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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은행원을 지망하는 분들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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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웬만하면 100 대 1이군요. 요즘 은행들 입사 경쟁률 말입니다. 그 좋다는 삼성이 올 하반기에 20 대 1이었으니 은행이 얼마나 인기 있는지 알겠습니다. 높은 연봉, 따뜻한 복지, 그리고 안정성이 매력이지요.

 하지만 겉보기와 실상은 다를 수도 있답니다. 은행이 안정적이라는 건 쉽게 망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망할 듯하면 정부가 공적자금을 넣어 살려내거나 건실한 은행과 합병시키지요. 돈 잘 벌 때는 성과급 잔치 벌이고, 흔들리면 정부에 기댈 수 있으니 안정적으로 보이긴 합니다. 어려운 말로 ‘이익의 사유화, 비용의 사회화’가 통하는 곳이지요.

 안심하진 말기 바랍니다. ‘조한제상서’라는 말 들어봤습니까. 조흥·한일·제일·상업·서울이라는 5대 시중은행의 줄임말이지요. 그중 지금 간판 남은 데가 있습니까. 외환위기 때 은행원은 추풍낙엽이었지요. 제일은행 직원들이 남긴 ‘눈물의 비디오’를 보면 안정성이란 말이 안 나올 겁니다. 꼭 안정된 직장을 원한다면 공(公)자 붙은 곳에서 철밥통 꿰차는 게 낫습니다.

 실력으로 출세하겠다는 의욕에 불타는 분 역시 재고하기 바랍니다. 실력 있다고 다 행장 되고 회장 되는 거 절대 아닙니다. 낙하산이 수시로 날아들기 때문입니다. 그에 버티다 험한 꼴 당한 분들도 있습니다. 예전엔 은행장 취임은 경제부 기자가 쓰고, 퇴임은 사회부 기자가 구속 기사로 쓴다고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흉흉한 분위기였는지 알겠지요. 그러니 낙하산이 뜨면 그 밑에 줄 서거나 기는 게 상책이라 하잖습니까. 여러분의 선배들도 대개 그렇게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건 낙하산뿐이 아닙니다. 정권 바뀌면 은행의 융자 정책도 휙휙 바뀝니다. 5년 전 이맘때 요란했던 녹색금융, 지금 어디 있습니까. 요즘 뜨는 건 창조금융이라 합니다. 이 역시 5년 뒤 어찌 될지 모르니 조심조심 다루기 바랍니다.

 그래도 영업 목표는 재주껏 채워야 한답니다. 은행 찾아온 고객을 가만 놔두면 바보 취급 당합니다. 대출 기업에 예금을 잡아두는 꺾기는 기본입니다. 카드에 보험에 펀드까지 와장창 끼워 팔아야 남습니다. 물론 대충대충 팔았다간 나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선 JP 모건이 불완전 판매로 130억 달러(약 14조원)라는 벌금을 얻어맞았습니다. 다만 우리 사정은 좀 다릅니다. 자리 차지하는 데엔 범처럼 날랜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도 사고 터지면 서로 책임 떠넘기느라 정신없지요.

 맑은 날 빌려준 우산을 비 오는 날 빼앗아 오는 기술도 선배들이 잘 가르쳐 줄 겁니다. 대출 자금이 예금주의 돈인 이상 떼이지 말아야 하지만, 너무 야박하게 굴면 욕먹는 법입니다. 예금주와 대출 기업 사이에 줄타기와 폭탄 돌리기를 해야 하는 은행원,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닙니다.

 혹시 케이블TV의 ‘탑 기어’라는 영국 자동차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기억하는지요. 평일 런던 금융가에서 자동차를 세워놓고 촬영을 시작하자 금융사 직원들이 구경하러 몰려들더군요. 이때 진행자가 말합니다. “이런, 여러분의 돈을 날려버리려는 은행원들을 방해했군요. 잠시나마 시청자들의 돈은 안전하답니다.” 이 말, 전 세계 은행원을 향해 날리는 통렬한 어퍼컷 아니겠습니까.

 어느 직업이나 사표(師表), 즉 본받을 만한 롤 모델을 따르는 게 이상적이겠지요. 문제는 우리 금융권에서 그런 분을 찾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신한금융을 키워낸 라응찬 전 회장은 불법 차명계좌를 운영했고, KB금융의 역대 회장들은 줄줄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사표라는 말 꺼내기도 민망합니다. 그분들의 불행이자 한국 금융의 불행입니다.

 은행은 돈 장사가 아니라 사람 장사라 하지 않습니까. 최근 일본 열도를 열광시킨 TV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은행원은 돈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한다.” 어렵게 들어간 은행에서 모두들 사람을 보는 은행원으로서 후배 세대의 사표로 크시길 바랍니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