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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기억하려는 역사만 썼다 … 좌·우, 교과서 전쟁 6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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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라. 미국사 수업에 조지 워싱턴이 어렴풋이 나오고, 초대 대통령으로 소개조차 안 된다면 말이다. 여권 단체인 전미여성기구 창립은 다루면서 미국 의회의 시작은 언급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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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10월 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린 ‘역사의 종말’이란 글의 첫머리다. 미국 의회 선거를 3주 앞둔 시점이었다. 체니 전 부통령 부인 린 체니(미국문학인기금 의장)의 기고다. 그는 초·중·고 역사교육 지침서인 ‘역사 표준서’를 정면 비판했다. 미 정치권과 학계·교육계를 양분시킨 역사 교과서 전쟁의 신호탄이었다. 의회 선거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95년 1월 상원은 역사 표준서 비판 결의를 99 대 1로 통과시켰다. 1년 6개월간의 논쟁을 거친 이후 집필진은 조지 워싱턴 등 ‘건국의 아버지’에 대한 소개를 보강한 개정판을 내놨다.

 2004년 한국에서도 교과서를 둘러싼 역사 전쟁이 벌어졌다. 금성출판사가 펴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보수 진영이 좌편향이라고 공격했다.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이라 논란은 더 격렬했다. 2013년 또다시 교과서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엔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가 새로 출간돼 공수(攻守)가 바뀌었다.

 반복되는 ‘역사 교과서 몸살’이다. 해방 이후 극심했던 좌우 이념 대립의 복사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이래 60여 년간 계속돼 온 논란이다.

 해방 후부터 72년까지 검인정이었던 국사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72년 10월) 등장과 함께 국책 과목이 됐다. 국가가 공인한 역사의 기억만 교과서에 기록됐다. 공산당은 ‘뿔 달린 괴물’로 묘사됐다. 사회주의 관련 서적은 모두 금서(禁書)였다.

 60년대에 미 하버드대에서 러시아사를 전공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소련에서는 56년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소련에서 폐기된 책들이 80년대 한국 운동권 교재로 쓰였다. 몽매한 수준의 반공교육이 낳은 부작용이었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현대사는 역사학계의 사각지대가 됐다. 해방 직후 좌우 대립, 남북분단, 군사정권의 등장 등은 민감한 주제였다. 70년대 강단의 사학자들은 현대사를 연구도, 교육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100년이 지나야 평가 가능하다”며 기피했다.

 기성 학계가 방치한 현대사 연구는 좌파 운동권 진영의 전유물이 됐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한국 근·현대사는 거의 좌파에 점령당했다. 나중에는 강의고, 논문이고 좌편향이 아니면 통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역사학계의 좌편향 흐름은 2004년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좌편향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때부터 우파의 반격이 본격화했다.

"역사를 권력투쟁 무기 삼는 역사의 정치화는 후유증 커"

우파의 반격은 냉전 해체 후 옛 공산권 비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한 우파는 좌편향 시각으로 폄하됐던 대한민국 건국, 6·25전쟁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을 재평가했다.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나오자 2004년 우파는 좌편향이라고 비판했다. 2006년 나온 책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우파의 반격을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2013년엔 보수 성향의 교과서가 나왔다.

 올해의 교과서 전쟁은 더욱 혼탁하다.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로 그렸다”는 등의 근거 없는 왜곡이 난무했다. 또 “이 교과서로 공부하면 수능에서 절반은 틀린다”며 현역 국회의원이 정치 공세를 펴기도 했다. 보수의 반격에 이은 진보의 재반격이다.

 역사학계에서 좌파의 장악력은 상당하다. 폐쇄적 반공교육의 후유증이기도 했다. 이미 세계 지성계에선 철 지난 것으로 판명난 좌파 이론들이 1980년대 한국에서 뒤늦게 힘을 얻었다. 북한을 추종하는 NL(민족해방), 주사파(주체사상파)가 대학가 운동권의 패권을 차지할 정도였다. 주요 대학과 학회 등 역사학계 전반에 좌파의 영향력이 미쳤다.

 우파의 반격과 좌파의 재반격이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지만 이 같은 논란이 성숙한 학술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념 성향이 강한 일부 언론과 정치권이 학자들에 앞서 소모적 정쟁을 부추겼다.

 이 같은 ‘진흙탕 싸움’에 대해 학계에서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보적 시각으로 한국 현대사를 해석해 온 서중석 전 성균관대 교수는 “해방 후는 좌우 싸움이 있었고, 80년대까진 강한 국가권력에 의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우리가 근·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이 없었다. 좌파든, 우파든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지금처럼 역사적으로 혼란이 있을 때는 사실에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 진보 세력도 사실에 더 다가가야 하고, 보수 세력도 사실에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를 비판하듯이 북한이 저지른 일들도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사학과의 최근 20년간 석·박사 학위 논문을 따져보라. 사회경제사나 정치사는 별로 없고 대부분 운동사다. 저항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좌편향”이라면서도 “대한민국사를 얼마든지 좌우의 시각에서 쓸 수 있다. 대한민국사 체계냐, 운동사 체계냐. 이건 선택의 문제다. 지금은 글로벌리즘과 자유주의에 입각해야 대한민국사를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학술논쟁이 필요하다. 지금까진 그런 자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이 지나치게 정치와 연계되는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윤평중(철학) 한신대 교수는 “역사 교과서 논쟁이 과도하게 정치화돼 있다. 현실 정치 세력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부분 비전문가다. 그럼에도 권력 획득과 집권을 위해 ‘역사 교과서 논쟁’을 동원하고 있다. 우선 역사학계 내부의 1차적인 토론과 담론의 장이 지속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거기서 논쟁해야 한다. 거기서 거를 건 거르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서양사를 공부한 김기봉(사학) 경기대 교수는 “역사 논쟁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건 국민적인 합의로 가는 통과의례다. 문제는 역사 논쟁이 역사전쟁으로 비화할 때 발생한다”며 “역사를 현실 권력 투쟁을 위한 무기로 이용하는 ‘역사의 정치화’는 곤란하다. 거기에는 큰 후유증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별취재팀=배영대(팀장)·백성호·성시윤·천인성·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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