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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시기, 분단 책임 명확히 … 모든 교과서에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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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검정을 통과했던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한 교육부의 수정 권고는 총 829건이다. 이 중엔 ▶일본군 위안부를 1944년부터 동원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도록 기술한 부분 ▶독립문의 착공·완공 연대(각각 1896년, 1897년)와 원래 존재하던 ‘영은문’을 허문 시기(1895년)의 착오처럼 사실 오류나 연대, 표기법에 관한 사안이 많다.

 또한 교육부의 수정 권고 사안엔 ▶정부 수립 과정 ▶북한 관련 서술 ▶베트남 파병 ▶남북 대립 등 근·현대사 부분도 포함된다. 이 시기에 대한 교과서들의 서술 중 교육부가 지적한 사항들은 국가 정체성(정통성), 분단 책임 등 좌우 이념에 따라 시각이 엇갈리는 사안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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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는 8종 교과서 출판사 모두에 분단 책임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교과서들은 광복 이후 정부 수립 과정을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45년 12월)→이승만의 정읍 발언(46년 6월)→김구 등의 남북 협상 추진(48년 4월)→ 48년 5·10 총선거’의 순서로 배치한 점을 지적했다. 남북 분단의 책임이 남한에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 교과서는 당시 북한에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46년 2월)가 설립돼 사실상 정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서술에서도 수정 권고가 많았다. 금성·두산동아·리베르·미래엔·비상교육·천재교육의 교과서는 교육부로부터 “북한의 토지개혁에 대한 정확한 사실 이해를 위해 분배 방식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권고를 받았다. 해방 직후 북한의 토지개혁은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토지 소유권을 분배한 게 아니라 경작권만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부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를 설명하면서 3대 세습에 대한 언급이 없거나(두산동아·천재교육),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누락됐다(두산동아·비상교육·천재교육)는 지적도 있었다.

 ‘우편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는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서술이 수정 요구를 받았다. 교육부는 ‘시위대가 무장하고 도청을 점거했기 때문에 계엄군이 이를 진압하기 위해 광주를 장악했다’는 서술에 대해 “5·18의 유혈사태 원인이 마치 시민에게 있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수정을 요구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시간 개념이 자리 잡았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서술로 오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발전에 대해 “대부분 제목이 부정적으로 표현됐고 경제 발전 성과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간략하다”(미래엔), 베트남 파병 중 베트남인의 피해에 대해 “양국 관계를 고려해 ‘민간인 학살’이라는 용어 대신 ‘민간인 피해’로 쓸 것을 권장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교육부는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수정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들 한국사 교과서가 차질 없이 공급되려면 적어도 11월 말까지 교과서 최종본(전시본)이 학교 현장에 배포돼 학교가 어떤 교과서를 선택할지 결정토록 해야 한다.

 집필진의 반응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를 쓴 한국학중앙연구원 권희영 교수는 이날 “ 오류, 표기법상의 문제는 수정 요구해 오면 당연히 응해야 한다”며 “국가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서술은 안 된다는 집필 기준을 준수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교학사 외 7종 교과서 집필진의 모임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자 협의회’는 지난달 “검정 취소 요구를 받을 만큼 부실한 교과서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에 참을 수 없는 허탈감과 모욕감을 느낀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었다. 교학사 교과서를 수정·보완한 뒤 통과시키기 위해 다른 7종 교과서도 문제점이 많은 것처럼 부각했다는 불만이다. 7종 교과서 집필자들은 곧 대책회의를 열고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8종 교과서 전체에서 사관뿐 아니라 연대 표기 등 단순 오류도 다수 발견되자 기존 검증 과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타났다. 교육부 심은석 교육정책실장은 “오류가 많았던 교과서는 올해 처음 역사 교과서를 낸 출판사(교학사·리베르)로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 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배영대(팀장)·백성호·성시윤·천인성·윤석만·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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