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오산 '슈자이너' 박진선 사장님, 연 매출 3억원 비결 뭡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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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 신상품이에요.” 박진선 슈자이너 사장이 270㎜인 새 구두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박 사장은 “몸이 큰 여성들은 구두 굽이나 볼이 빨리 닳아서, 마음에 드는 구두가 있으면 같은 디자인을 한 번에 서너 개씩 사 간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발이 큰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 분명히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경기도 오산시 갈곶동. 오산 시내에서 차로 5분 정도 더 가면 50㎡ 규모의 구두가게 ‘슈자이너’가 나온다. 단화부터 굽이 9~10㎝에 달하는 하이힐, 겨울부츠까지 다양한 신발들이 진열된 이곳은 다른 구두가게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255~270㎜ 구두만 판매하는 빅사이즈 여성화 전문점이기 때문이다. 슈자이너의 연매출은 3억여원. 매출이 가장 높을 때는 6억원까지 올랐지만 순이익은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단골 위주 전략을 선택해 1년에 지금은 서너 번씩 재구매하는 온라인 고객이 3000명, 하루 평균 매장을 찾는 손님들은 30~40명에 달한다.

 18일 찾은 슈자이너는 여전히 간이 선풍기와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다. ‘고객들이 더위를 많이 탄다’는 게 이유였다. 빅사이즈 쇼핑몰만의 배려다. 박진선 사장은 “‘슈자이너’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파는 가게”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여성화는 225~250㎜로, 그보다 큰 사이즈를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255~280㎜를 신는 여성들은 20만~60만원을 들여 직접 맞춰 신어야 한다. 박 사장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모르는 빅사이즈 여성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처음부터 ‘왕발구두’를 판매했던 것은 아니다. 10년간 구두회사에서 일하다가 온라인 매장과 오프라인 매장을 동시에 낸 박 사장은 처음 1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온라인 매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 디자인이 출시되고 가격 경쟁도 치열해 소자본 창업자가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 둘이 모두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어졌다. 5000만원으로 시작한 가게는 빚에 빚을 더해갔다.

슈자이너 단골 고객들이 모델로 나섰다. 누구나 모델 체험을 할 수 있다(사진 위). 박 사장의 남편 김선일(43)씨는 수선을 담당한다. 박 사장과 김씨는 같은 학교 신발학과 캠퍼스 커플이다. [김상선 기자]

 고민하던 박 사장의 머리를 스친 것이 바로 빅사이즈 구두다. 구두회사에서 근무하던 당시 260㎜는 왜 없느냐, 제발 판매해달라는 전화를 종종 받았던 게 생각났다. ‘시장은 분명히 있는데 왜 안 만드냐’고 회사에 요구하면 늘 ‘그걸 몇 족이나 판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 사장은 그 말 때문에 상처받은 여자들을 위해 구두를 팔기로 했다. 250㎜를 힘들게 신어왔던 그가 임신으로 발이 부어 남성용 슬리퍼만 신어야 했던 것도 떠올랐다. 박 사장은 ‘못 팔면 내가 신지’ 하는 심정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면접을 앞둔 취업 준비생들이 특히 고마워했다. 박 사장은 “정장을 입고 검은 운동화를 신어야 하나, 남자구두를 신을까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눈물 흘리다가 슈자이너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 그분들이 한꺼번에 네댓 켤레씩 구매해 가면서 연신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면 참 뿌듯하다”고 말했다. 제주도와 대구, 강원도 강릉에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1년에 네 번 계절마다 찾아와 신상 구두를 네 켤레씩 사가는 단골 고객들 덕에 쉴 새가 없다.

 270㎜ 구두를 신는 할머니 네 분이 인천에서 택시를 타고 오산의 슈자이너 점포까지 찾아온 일도 있었다. 60대 한 분, 70대 두 분, 80대 한 분이었다. 할머니들은 “평생 예쁜 구두를 신어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보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며 연신 구두를 이리저리 만져봤다. 힐을 직접 구매하진 못했지만 가장 젊은 60대 할머니가 대표로 이것저것 신어보며 “평생의 한을 풀고 간다”고 말할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박 사장은 스스로 가게의 가장 첫 번째 손님이 되는 게 인기비결이라고 귀띔했다. 99 사이즈를 입고 구두도 250~255㎜를 신는 박 사장은 매장의 모든 제품을 직접 착용해본다. 입어보고 신어보고 불편하면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내가 불편하면 손님도 불편하다’는 게 이유다. 박 사장은 “몸이 큰 여성들은 구두를 신을 때도 다른 것보다 쿠션감이 중요해요. 힐이 좀 폭신해야지 다리가 덜 아프고 옷도 땀이 잘 차는 부분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잘 알아야 하죠”라고 말했다.

 지금 함께 판매하고 있는 레깅스(스타킹 일종)와 빅사이즈 속옷, 겉옷들도 손님들이 ‘제발 구해달라’고 부탁해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박 사장은 “몸이 큰 사람들은 레깅스를 신으면 길이가 짧고 허리 밴드가 쉽게 늘어나 굉장히 불편하다”며 “구두 구매 고객들이 스타킹과 레깅스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시중에 나오는 도매품을 전부 입어봤다. 내가 편하고 예쁘다고 생각한 제품을 들여오자 불티나게 팔리더라”고 말했다. 현재 레깅스는 슈자이너 매출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상품이다.

 가격경쟁력도 슈자이너의 장점 중 하나다. 슈자이너의 구두 가격은 일반 매장과 비교해도 저렴한 편이다. 단화나 힐은 3만9000원, 부츠는 6만9000원 선으로 로드숍과 비슷하다. 박 사장이 지난 10년간 공장에서 일하며 친분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구매가격이다. 박 사장은 “원가는 물론 업계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공장 사장님들이 많이 배려해 주신다”고 설명했다.

 7년 전과 달리 지금은 온라인 빅사이즈 매장이 다양화됐는데 위기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자 박 사장은 “고객들이 여기저기 갔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오더라”고 말했다. 고객에게 구두와 옷만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함께 담기 때문이란 얘기다. 박 사장은 “뚱뚱한 사람들은 옷을 한 번 입으면 팔이나 허리가 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른 빅사이즈 몰은 사이즈가 다르다고 해도 고객이 뚱뚱한 게 잘못이라며 절대 교환을 안 해준다. 그런데 우리는 ‘내가 입겠다’며 교환을 해준다”고 말했다.

 고객과의 소통도 박 사장만의 특기다. 박 사장의 카카오톡 친구 중 5000여 명 정도가 슈자이너 고객이다. 박 사장은 신제품은 물론 일상을 고객들과 공유한다. 제주도에 사는 고객이 감귤을 수확하면 다른 고객들에게 판매해주고, 옷가게를 하다가 점포를 철수하는 고객의 마네킹도 팔아준다.

 고객들을 온라인 쇼핑몰 모델로 선정하기도 한다. 직접 신제품을 입고 사진을 찍는 ‘체험모델’을 통해 평생 슈자이너 고객이 되는 셈이다. 건강을 위해 함께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소통수단 중 하나다. 박 사장이 ‘오늘 같이 걸을 사람’이라고 깜짝만남 공지를 올리면 10여 명은 모인다. 저녁 8~9시쯤 함께 수다 떨고 오산천을 걸으며 다이어트와 스트레스 해소를 동시에 하다 보면 어느덧 고객이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 박 사장은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가게 문을 3주간 닫았을 때 가게 앞에 커피며 편지, 꽃들이 놓여 있었다. 손님들이 ‘언니 문 닫으면 우린 갈 데가 없다’며 꼭 장사하라고 응원해 힘을 얻었다”며 “내가 계속 일하는 원동력은 고객”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창업을 앞둔 이들에게 “절대 포기하지 말고 주변의 말에 휘둘리지 마라”고 당부했다. 2007년 개업 당시 진 사업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때 박 사장은 ‘그만둘까’ 수도 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단골손님들만으로도 안정적인 매출을 확보할 수 있는 점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글=채윤경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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