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산시대』의 종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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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제2 진산파동이 남긴 것>
유진산씨의 갑작스런 지역구 포기로 일어났던 신민당의 파동은 유씨와 김대중씨간의 가파른 대치와 당권을 염두에 둔 당내 주류·비주류의 갈등으로 혼미를 거듭하다가 유씨의 당수직 사퇴와 김홍일 전당대회의장의 당대표권한대행이란 잠정적인 수습의 선으로 만 3일만에 가라앉았다.
선거기간 중의 파동이었기 때문에 총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클 것 같다. 4·27 대통령선거의 선전으로 쌓아올린 야당 「이미지」를 얼마만큼 복구할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물론 파동의 밑바닥에 깔린 정치풍토의 근원 「밀약설」에서 받은 쪽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렇게 만든 쪽이나 준 쪽도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논리지만 진산파동은 우선 신민당쪽에 피해를 주는 것 같다.
그 피해가 유진산씨 개인에게 머물러야 하며 신민당에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말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번 파동은 이제까지 신민당 안에 개운치 않게 깔려온 혼탁한 정치작풍을 일소하는 계기가 되고 또 선거 뒤로 예상되던 당권경쟁의 양상이 한발 앞서 노출됐다.
유진산씨가 특히 공천과정에서 보여온 「전횡의 영도권」과신을 이번 파동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면, 참신한 「이미지」가 앞으로의 야당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당내문제로는 총선 뒤의 당권경쟁이 대통령후보지명 때와 같이 젊은 층에 의해 주도되게 되었고 이점에서 「진산시대의 고별」을 가져왔다.
앞으로 남은 2주일 동안의 총선과정에선 4·27 대통령 선거에서 선전한 김대중 씨와 김영삼·이철승씨 등 중견층의 유세가 주전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유진산씨 등 원로층은 별로 표면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김대중씨가 선거기간 중 이번 파동의 책임한계를 유세에서 밝힐 것으로 보이고 또 김영삼·이철승씨도 유당수퇴진의 타당성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유씨의 총선 뒤 재기 가능성은 거의 없다.
파동이 수습되긴 했으나 「말끔한 수습」이 되지 못했다는 견해는 당내에서도 들을 수 있는 말. 그 이유는 유진산씨가 사태수습을 위한 분명한 거취를 조속히 밝히지 않고 당권에 연연한 듯한 언행을 보인데 큰 원인이 있다고들 한다.
파동 후의 유씨 태도를 두고 『야당에 대한 국민의 여망과 당원들에 대한 당수로서의 책임을 외면한 행동』이라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실 20년 야당생활을 하면서 그 자신이 겪었던 많은 어려움과 동경에서 요양중이던 유진오 전 총재를 설득하여 넘겨받은 당수직을 생각할 때 선뜻 당을 떠나기에는 심경이 착잡했을 것이고, 그를 따르던 주류의 많은 당원들을 생각할 때 괴로움이 뒤따랐을 것인지도 모른다.
유씨는 아직도 당장의 은퇴를 거부, 『적당한 시기에 당의 「이미지」를 살리는 조치를 취하겠다』고만 할뿐 『그러한 조처에 앞서 계략으로 당권을 쥐려는 풍조는 일소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씨의 이러한 태도나 그 주변사람들의 움직임은 파동의 책임규명보다는 당권경쟁의 양상으로 사태를 몰고 감으로써 초점을 흐리게 하고 있는 감이 짙다.
앞으로 유씨가 국회의원 선거 후에 있을 전당대회에서의 「롤·백」을 위해 권토중래할 것인지 아니면 미련 없이 신민당을 떠날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지금의 그의 심정은 당을 떠나더라도 조용히 떠날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씨는 유씨의 조속한 정계 은퇴를 거듭 주장하면서 『앞으로의 당무를 김홍일 당대표 서리와 협의하여 처리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파동을 유씨가 은퇴 아닌 일보 후퇴한 선에서 수습되도록 중재했던 김영삼·이철승 두 40대의 태도가 『유씨의 후퇴는 찬성하나 김대중씨에게 당권을 넘겨줄 수는 없다』는 것이 분명한 이상 앞으로 있을 신민당의 당권 경쟁 양상은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고 복잡하게 전개될 것 같다.
김영삼·이철승 양씨의 관계가 원래 손발이 맞는 사이가 아니었었고 김대중씨와 더불어 상호 경쟁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 지금까지 운영위 수석부의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진산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다져왔던 양일동씨가 쉽사리 후퇴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총선 후의 당권경쟁은 주류-비주류 뿐 아니라 자칫하면 노-소장간의 대립까지 뒤엉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허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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