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과 신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좁은 합승의 맨 앞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씨로 「금연」이란 글자가 크게 쓰여져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팻말 아래 의자에서 점잖은 신사 두 분이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며 요즘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 제법 진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바닷바람이 좀 심해서 창문을 꼭꼭 닫았기 때문에 담배연기는 차안에 자욱하게 피었다. 참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기까지 한다.
아기를 안은 옆의 부인이 못 견디겠다고 기침을 했다. 아기도 매운지 콜록콜록한다. 그래도 신사는 아랑곳없이 모른 체하고 담뱃불을 끄려고 하지 않았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지 젊은 회사원인 듯한 남자가 좀 미안스럽다는 말투로 공손히 신사에게 말을 건넸다.
"저어, 죄송합니다만 담뱃불을…좀…."
신사가 흘깃 청년을 돌아다보곤, 심술궂게 이번엔 연기를 더 뿜어댔다. 젊은이는 신사가 자기 말을 미처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마디했다.
『선생님, 담뱃불 좀 어떻게….』신사가 버럭 화를 냈다.
『여보, 당신이 뭔데 피워라 말아라 하는 거요?』
젊은이는 그래도 공손히,
『차안에서는 담배를 안 피우게 돼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탔는데 담배를 피우시면 연기가 차서….』
신사는 그래도 한동안 담배 피우기를 계속 하더니 슬그머니 불을 비벼 껐다. 체면상 젊은이에게 주의 받고 불을 끄기가 안돼서 좀더 뻗대어 본 모양이었다.
차안에서 남이야 괴로워하든 말든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사람도 딱하지만 차장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으면 친절하고 공손하게
『여러 손님도 계시고 당국에서도 단속을 하니 담배는 삼가 주세요….』하면 어떨까. 그러면 같은 승객끼리 무슨 트집을 삼을 필요도 없고 명랑한 여행이 되지 않을까. <이정숙 부산시 동구 범일동 657·13통5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