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스타] 촬영 한창 김희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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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느라 정말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근데 뭐 사들고 오신 건 없나요?"

김희선(26)의 밝은 웃음이 눈발 날리는 대관령의 정적을 깨뜨린다. 지난달 27일 오후 강원 횡계의 '화성으로 간 사나이' 촬영장. 0.5㎞가 넘는 눈비탈을 몇번이나 미끄러질 뻔하면서 걸어올라간 해발 9백미터 산기슭은 3월이 코앞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하얀 눈세상이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시골 마을에서 오누이처럼 자란 두 남녀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영화. 김희선은 아버지를 잃은 뒤 성공을 위해 도시로 떠난 소희를 연기한다.

고향에서 우편 집배원으로 일하며 소희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승재는 신하균이 맡았다. '동감'의 김정권 감독이 두번째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날 촬영분은 고향에 다니러 온 소희가 승재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인 오두막에 들르는 장면이다.

빨간 스웨터와 쑥색 치마를 입은 김희선의 화장이 좀 진해 보인다. 워낙 안개가 짙고 눈발이 쉴 새 없이 날려 화장을 선명하게 하지 않으면 카메라발이 좋지 않다는 게 코디네이터의 설명이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라 맨땅에 앉은 김희선은 카메라만 딴 데로 돌아가면 핫 팩을 꺼내 발을 문질렀다.

새벽 6시 30분부터 시작된 촬영이 마무리된 건 오후 6시께. 마주 앉은 김희선은 "덜덜 떨다 따뜻한 데 들어오니 졸린다"면서도 내내 상기된 표정이었다. 까탈스러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질문 한 마디를 던지면 백 마디의 답이 돌아오는, 유쾌한 인터뷰였다.

-멜로 영화를 좋아하나 봐요. '카라''비천무''와니와 준하'…영화 출연작이 멜로뿐이네.

"처음에는 이미지 변신용으로 멜로 영화를 택했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멜로가 점점 좋아져요. 멜로는 연기하는 과정이 아름다워요. 감정이 풍부해지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하고 나면 제가 더 아름다워지고 예뻐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이미지 변신용이라니요.

"김희선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싫었거든요."

-(알면서도 모르는 척)수식어?

"신세대, 당돌하다, 튄다…."

-'되바라졌다'도 있잖아요.

"어머, 저보고 되바라졌다고들 그래요?(웃음)"

-멜로 연기를 하다 보니 성숙해졌다는 뜻인가요.

"그런 점도 있고요, 제가 나이가 들긴 든 것 같아요. 결혼하고 싶거든요. 꽃을 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같이 먹고 싶고…."

-멜로 영화는 여주인공이 예쁘게 그려지니까 그런 건 아니고요?

"아뇨. 멜로를 하면 제가 예뻐진다는 말은 외모 얘기가 아니에요. 여배우가 예쁘게 보이고 싶으면 방법은 많죠. 그보다는 깊은 내면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 연기에 대해서 '내면을 표현하지 못하고 겉돈다'는 지적이 많았던 거 잘 아니깐요."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소희는 어떤 역할인가요. 근 2년만의 영화 출연인데.

"이 영화는 정말 슬픈 얘기예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존재를 뒤늦게 깨닫지만 그땐 이미 남자는 죽죠. 소희는 저랑 참 닮은 데가 많아요. 화가 나면 울기 보단 엄청 웃기는 영화 보면서 푸는 식으로, 슬퍼도 내색을 하지 않아요. 슬프다고 '나 슬퍼 죽겠어' 이러면 왜 덜 불쌍하잖아요. 생활력이 강해 씩씩하게 살아가는 소희가 맘에 들어요."

촬영 중 어려움은 없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촬영장이 눈길을 한참 올라가야 있는 터라 생리 작용을 해결하는 일이 제일 힘들었다며 까르르 웃었다. "한번 내려 가려면 30분이 걸리니 웬만하면 참았어요. 근데 하균이 오빠는 물이랑 커피를 맘껏 마셔요. 그리고 잠시 사라진 다음에 개운한 표정으로 나타나는 거 있죠."

-장이머우(張藝謨)나 첸 카이거(陳凱歌)등 거장 감독들이 서울에 와서 김희선씨를 꼭 만나고 가던데요.

"훌륭한 감독들이 찾아주시니 기쁠 따름이죠. 우리도 왕쭈셴(王祖賢)이나 류더화(劉德華)같은 홍콩 스타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지금 제가 중국에서 그런 위치인 것 같더라고요."

-'올인'의 송혜교씨 역을 제안받았던 걸로 아는데. '올인' 시청률이 40%를 넘었어요. 후회 같은 건 없는지.

"역할은 마음에 들었는데요, '화성으로 간 사나이' 촬영과 겹쳐서 할 수가 없었어요. '와니와 준하' 전까지만 해도 낮에는 드라마, 밤에는 영화 하는 식의 강행군을 했는데 이제 그런 게 싫어요. 여유를 갖고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에서 일하고 싶어요."

인터뷰하기 이틀 전이 생일이었다는 김희선. 다행히 짬이 나 서울에 올라가 친구들과 생일 잔치를 할 수 있었다며 또 웃는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1년이 넘게 활동을 않고 쉬다 보니 인터뷰하는 법도 까먹을 정도"라고 했던 말은 엄살인 듯 싶었다.

횡계=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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