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오뚝이 기업인 3전4기 희망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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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이라크에 전운이 점차 짙어지는 요즘 삼테크의 이찬경(57)사장은 하루에도 몇번씩 한 이라크 공무원을 떠올린다. 이름은 탈립.

이라크 정부 안에서 전쟁물자 수입을 담당하는 중견 간부였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확전되자 그는 군 장교로 차출 돼 전선에 나갔다. 그는 끝내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1990년까지 삼성물산 바그다드지점장으로 있던 이사장과 그는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얼굴이 배우처럼 잘 생겨 우리는 그를 '록 허드슨'이라 불렀다"고 이사장은 기억했다. 73년 제일합섬에 입사해 섬유 수출팀에 근무하던 이사장의 일터는 75년 삼성물산이 종합상사 1호 업체가 되면서 모래 바람 이는 중동으로 바뀐다.

회사에서 치르는 주재원 시험에 합격해 삼성물산의 베이루트지점으로 떠났다. 거기서 끝모를 내전을 지켜보던 그는 쿠웨이트지점을 거쳐 85년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바그다드지점장으로 갔다.

그는 이란과 이라크가 8년간 전쟁을 치르는 바람에 재미를 톡톡히 봤다. 한번에 국경지역에 설치할 철조망을 3천만달러어치나 수주했다. 당시로선 꽤 큰 수출규모였다. 이를 위해 그는 포탄이 떨어지는 바그다드 시가지를 누비고 다녔다.

이사장의 인생 항로는 상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90년 이후에 더 출렁거렸다. 중동 전문가로 꼽혔지만 중동 특수가 사라지고 종합무역상사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사장은 회사를 떠났다.

정보시스템 사업부장으로 있던 그는 삼성물산이 자회사로 세운 컴퓨터기기 유통업체인 삼테크의 대표로 갔다. 말이 대표였지 좌천이었다.

삼테크가 낸 첫 매장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정부가 이란과의 친선을 위해 테헤란로 라고 이름 붙인 거리에 새 둥지를 튼 것이다.

모래 바람 대신 분 PC바람을 업고 삼테크의 사업이 제 궤도를 달릴 무렵 삼성물산은 대기업이 할 사업이 아니라며 삼테크를 종업원지주회사로 분리하는 결정을 내렸다. 95년의 일이었다.

임직원들이 자본금 20억원을 모두 사들일 자금을 장만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더욱이 대기업이란 큰 우산이 사라지면 어떻게 사업을 하나라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이사장은 지분의 30%를 인수하기위해 아파트를 팔고 친인척의 돈을 끌어모았다. 이사장은 "남자는 비도 맞고 눈도 맞는 것 아니냐"며 삼테크의 지킴이가 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독립회사가 되자 주거래 은행의 시선은 차가워졌고 단골 업체들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로 뛰는 영업말고는 믿을 구석이 없었다.

서울 청계천 뒷골목에 있는 판자촌같은 조립공장들이 삼테크의 주요 거래선이었다. 단골업체가 늘어나고 새로 시작한 소프트웨어 판매사업이 탄탄대로를 달려 독립 3년 만에 매출액이 1천억원을 훌쩍 넘었다.

그러나 독립회사 출발 3년째인 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져 같이 고생했던 1백여명의 직원을 떠나보냈다. 물건을 가져간 중소업체들의 잇따른 부도로 떼인 돈이 수십억원에 이르렀다. 이사장은 자신의 봉급부터 30% 줄이고 모자라는 자금은 이리저리 뛰며 변통했다.

위기를 넘기자 곧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 휴대전화 바람이 불었다. 이동통신에 들어가는 반도체 유통사업이 효자 노릇을 했고 이어 불어닥친 벤처 태풍은 삼테크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2001년 코스닥에 등록하자 액면 5백원짜리 주가가 2만원대를 넘나들었다. 이사장의 지분을 당시 시가로 환산하면 4백억원쯤 됐다.

당시 삼성물산에 있던 이사장 동기들은 "이사장이 거부 대열에 올랐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1년도 채 안돼 코스닥시장이 곤두박질해 이사장이 갖고 있는 주식은 현재 시가로 40억원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는 "모래 바람이 이는 열사의 땅에서나 볼법한 신기루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저는 지분을 팔 생각이 없어요. 내 생전엔 삼테크하고 같이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삼테크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설립한 홍콩법인과 선전.상하이의 거점을 잘 활용하면 올해도 지난해보다 10% 성장한 5천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사장은 "직장생활에도 사이클이 있다"며 "어려울 때 기회가 찾아오고 자신도 모르는 용기가 솟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생을 길게 봐야 하는데 요즘 젊은 샐러리맨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아 무작정 이직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는 충고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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