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바른 이해와 지도 (1) 정신적 성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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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학교 무시험제가 실시된 지 3년, 더욱 치열해진 입시를 치러 교문에 들어선 고교생들은 「사춘기」라는 막연한 표현 속에서 가정과 학교, 사회로부터 각각 다른 기대와 눈총을 받고 있다. 신문 사회면에 나타난 몇몇 학생들의 탈선이 간혹 도맷금으로 「요즘 고교생」으로 불릴 만큼 급변하는 시대에 대한 어른들의 올바른 이해가 뒤따르지 못하는 현실이다. 현재 전국의 고교생 수는 59만3백82명 (문교부 집계), 그중 4분의3이 넘는 45만9천3백여명이 도시에 몰려 있다. 장래에 대한 꿈과 당장의 학업, 또 전통적 기성 관념과 현실의 사이에서「예비 어른」으로서의 고교생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요즘의 고교생들을 만나 본다.
『어른들은 우리가 「재즈」나 좋아한다고 아무런 생각이 없는 철부지로 취급하지만 그런 어른들의 태도가 오히려 우리들을 의타심 많은 겁장이로 만들고 있다. 』
A 고교 3년 김모 군은 자기 나름대로 항상 어른다울 수 있는 나이를 강조했다. 따라서 어른들의 지나친 간섭에 대해 반발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들 나이의 한번 실수를 갖고 두고두고 날인을 찍어 버리는 일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G 여고 1학년 현 모양은 어른들의 위선적인 태도가 못 마땅하다고 했다.
어른들 자신도 실수를 저지르면서 자녀들의 실수를 감싸주고 격려하기는커녕 『너는 늘 이래서 탈이다』하고 점을 찍어버리기 때문에 조그마한 실수라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엉뚱한 거짓말을 하게 되고 때로는 반항으로 맞서 본다는 것이다. 청소년 층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없이 그때그때 쉽게 판단해 버리는 어른들의 태도는 남녀 고교생들의 가장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B 여고 생활 지도부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의 70% 이상이 자신의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것은 어른들과의 대화로 자신을 굳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교사들은 판단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사회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다분히 현실적인 가치관을 보이고 있다.
K 여고 상담실을 찾은 학생들 중에서 많은 수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실제로 통하지 않는다』는 예를 들어 학교와 사회와의 관개를 물어 오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현실 문제에선 어른들의 짐작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고 K고교 상담 교사는 말한다.
중앙대 교육학과에서 전국 31개 고교생을 상대로 조사한 것을 보면 앞으로의 직업 선택은 『수입이 많은 곳』을 택하겠다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고 다음이 명예와 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직업으로 나타났다. 『유명한 천재보다는 평범한 생활인이 되고 싶어요. 남에게 특별히 해가 되지 않고 또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이 희망입니다.』 세칭 일류고교에 재학중인 Y양의 이 말은 많은 교사들도 수긍했다.
『확실히 우리들에겐 허황한 꿈보다는 착실한 설계에 더 마음이 쏠리고 있어요.』 B고교 이모 군은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정서적인 빈곤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며칠씩 머리를 싸매고 고전에 몰두하는 식의 학생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소설을 읽을 때도 교과서에 나온 것들,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우선 고르게 된다』고 말하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과중한 학교 공부와 입시의 부담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공부 아닌 것은 그냥 쉽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교사들은 지적한다. 학생들 자신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은 피하고 있다. TV를 봐도 우선 지루하지 않은 것을 꼽고 책도, 놀이도 어렵지 않은 것이 제일이라는 것이다.
『문제 의식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B 고교 교사 이상주씨는 말했다. 이것은 대량 생산적인 교육 체제 속에서는 학생 한사람마다 개별 지도가 불가능하여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훈련을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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