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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 죽인 범인 자수|짝 잃은 암놈…알 버려 둔 채 둥우리 떠나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일 상오 황새 수놈을 쏘아 죽인 일요 낚시회 소속 이용선씨 (46·서울 성동구 신당동 290·성동 방앗간 주인) 가 경찰에 자수했다. 이씨는 지난 4일 상오 10시10분쯤 충북 음성군에 낚시 갔다가 내곡 저수지에서 계곡을 두개 넘어 야산 중턱을 오르고 있을 때 뒤쪽에서 머리 위를 가로질러 휙 날아가는 흰 새를 보고 반사적으로 가지고 간 총 1발을 쏘았으나 솔잎에 가려 맞지 않아 다시 1발을 발사하자 날아가던 황새가 갑자기 왼편으로 급회전하며 산등성이를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씨는 처음에는 자기 총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가 산둥성이 너머 계곡 밑에 바로 그새가 피를 흘리고 떨어진 사실을 알고서야 비로소 그의 총에 맞은 것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씨에 따르면 이때 떨어진 새는 함께 갔던 오 모씨가 주웠으며 처음엔 두루미인줄 알고 『내가 쏜 것인데 보호조인 것 같아 숨기는 것이 좋겠다』고 이른 뒤 기분이 나빠 사냥을 중단하고 산에서 하오 5시까지 보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에 돌아온 후 5일 하오 다방에서 중앙 일보를 읽고 자기가 쏜 것이 황새임을 알고 원병오 교수 댁에 전화를 걸었으나 음성에 현지 답사 중이어서 연락을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고민하기 시작, 『국민에게 죄송하다』 는 유서와 극약까지 준비,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다가 6일 아침 원 교수에게 연락이 되어 자수를 권유받고 경찰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약 7년 전부터 「레밍턴」5연발 엽 총으로 사냥을 해왔다고 말했는데 사고 당일 금렵 기간인줄 알면서도 친구 김 모씨의 사냥개 첫 훈련에 따라나섰다가 이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울먹였다.
한편 이씨는 자수하면서 죽은 황새를 갖고 있는 오씨에게 연락, 문화재 관리국에 보냈다고 말했다.

<박제 만들어 보관>
문화재 관리국 장인기 문화재 관리 과장은 6일 하오 중으로 원병오 교수 등 조류 관계 학자들을 초청, 죽은 황새를 박제로 만들어 창경원 표본관에 보관하겠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또 7일 문화재 관계관들과 학자들로 구성된 조사반을 현지에 파견, 암놈이 품고 있는 알의 인공 부화 가능성을 검토, 가능하면 인공 부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음성군 생극면=김재혁·김택현 기자】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 한 쌍 중 수놈이 사냥꾼의 총질에 목숨을 빼앗긴 후 하룻 만인 5일 혼자 알을 품고 있던 암놈마저 4개의 알을 버리고 둥우리를 떠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5일 상오 황새의 참사 현장인 충북 음성군 생극면 관성리 앞산을 현지 답사한 원병오 교수 (경희대 조류 연구 소장) 는 황새 한 쌍이 3월 하순 두 번째 산란 때 모두 4개의 알을 낳아 부화 중이었음을 확인했다. 원 교수는 이날 자취를 감춘 암놈에 대해 『수놈이 먹이를 물어오기를 기다리다가 허기에 지쳐 먹이를 찾아나간 것으로 보이나 수놈이 죽은 것을 암놈이 알게되면 부화를 포기하고 새 짝을 찾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세계에서 유일한 황새의 자연 번식을 몰지각한 사냥꾼의 총질이 끊어버렸다』고 안타까와했다. 임시 관리인 윤우진씨 (55) 에 따르면 황새 암놈은 수놈이 죽은 후인 4일 밤늦도록 둥우리 주변인 관성리 앞산 일대를 수놈을 찾으려는 듯 선회하다가 5일 상오 11시30분쯤 자취를 감추어 6일 상오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씨는 이 황새 암놈이 민가에서 1km쯤 떨어진 관성리 앞산 마루터기의 높이 4m쯤 되는 소나무 가지 위에 둥우리를 만들어 큰 오리알 만한 흰색 알 4개를 낳아 10여일 동안 품어오다가 수놈이 죽은 후 알을 그대로 두고 행방을 감추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원 교수는 민간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고 둥우리 주변에 먹이를 마련해 주는 등의 긴급조치가 필요하며 끝내 돌아오지 않을 경우 황새 알을 서울에 가져가 인공 부화를 시켜서라도 황새 부부가 못다 이룬 자연 번식을 성공시켜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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