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위험 높은 간 질환, 국민 인식은 낮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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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가톨릭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병석 교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숙종은 15세 때 간염을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대 중반부터 배가 부풀어 오르고, 부종이 생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망 직전 ‘복부가 날로 더욱 팽창해 배꼽이 불룩하게 튀어나오고, 수라를 잘 들지 못하고 호흡마저 고르지 못한 데다 때때로 혼수상태에 빠지곤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같은 증세는 모두 간질환 말기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숙종은 오래도록 간질환을 앓다가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왕 조차도 간질환은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간은 ‘인체의 화학공장’이라 불리는 중요한 장기다. 문제는 간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기능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도 특별한 증상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간질환 환자는 일정 수준으로 나빠지기 전까지 이상을 느끼지 못한다. 간을 ‘침묵의 장기’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흔한 간질환으로는 간염이 있다. 간염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간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간질환으로 사망할 위험도 정상인에 비해 30~100배 높다.

 B형 간염 바이러스는 이처럼 위험하지만 국민 인식은 여전히 낮다. 대한간학회가 국내 성인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간질환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45.4%가 B형 간염 바이러스의 감염 여부를 알지 못했다. 또 절반 이상인 54.3%는 증상과 혈액검사만으로 간암을 진단할 수 있다고 응답해 올바른 진단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대한간학회는 매년 10월 20일을 ‘간의 날’로 정하고, 한국간재단과 함께 간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시대 의학이 지금 수준이었다면 숙종은 간질환으로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인은 조금만 노력하면 B형 간염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선 B형 간염은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다. 또 만성 B형 간염 환자도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항바이러스제로 치료가 가능하다. 정기 검사와 필요에 따라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간경변증·간암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의학의 발달로 간질환 환자도 충분히 건강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간질환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속적인 치료, 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병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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