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리베이트,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의 실마리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심 판결에서 리베이트 혐의로 유죄를 선고 받은 동아제약과 의료인측 모두 1심 법원의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의료인 피고 19명 가운데 12명은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고, 나머지 7명은 항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아 의사면허정지가 불가피한 상태다. 동아제약과 동아제약 임직원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광장도 지난 7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1심 재판 결과 동아제약은 벌금형, 임직원들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항소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의사들의 집단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다. 개원가를 중심으로 동아제약에 대해 자발적인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 동아제약에 대한 거부감이 극에 달해 “동료 의사를 졸지에 전과자로 만든 동아제약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의료계에 지배적으로 퍼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오직 진료에만 매진해 온 의사들을 기망해 사회적 사형선고를 받도록 한 동아제약이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의사 전용 포털사이트에선 동아제약 처방대체 목록이 회원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으며, 다른 의사들에게 동아제약 리베이트 사건의 실상을 적극적으로 알리겠다는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의협은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의사를 기만한 사기사건’으로 규정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리베이트 없이는 제약 영업이 불가능하다?!

의료계의 감정이 악화될 대로 악화된 지금, 제약업계의 입장은 어떨까. 의료계와 동아제약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현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제약인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그리고 실제 리베이트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지, 리베이트를 왜 해야만 하는지, 이번 사건이 리베이트 관행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제약인에게 직접 묻고 싶었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지난 11일 저녁, A씨를 만났다. “별로 할 얘기가 없다”며 기자와의 만남에 회의적이던 A씨. 그는 제약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한 베테랑 영업사원이다. “그저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영업사원의 솔직한 심정을 듣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A씨는 “동아제약 사건소식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 동아제약 사건이 터진 후,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에게 달라진 점이 있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위축된 건 사실이다. 이전에도 리베이트와 관련해서 업계가 긴장한 사건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업계 1위인 기업이 하루 아침에 벼랑 끝에 몰리는 모습을 보면서 ‘알아서 몸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사건에 연루된 동아제약 전 영업사원이 법정에서 “리베이트 없이는 제약 영업이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이 말에 동의하나?

동의한다. 몇 번의 리베이트 관련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도 리베이트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10년 전보다 리베이트의 강도는 약해졌다. 하지만 영업사원이 리베이트를 아예 배제하고 영업을 할 순 없다. 영업사원이 하는 일은 의사를 만나 우리 회사 약에 대해 설명하고 홍보하는 일이다. 지금도 회사에서는 의사를 만나 약에 대한 이야기만 하라고 한다. 하지만 매번 만나서 약 얘기만 할 수 있나?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 신용카드나 보험상품 홍보 하는 스팸 전화를 매번 끝까지 듣는 사람이 있을까? 그냥 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의사를 만날 때마다 매번 똑같이 약 얘기만 하면 의사도 듣지 않는다. 때문에 여러 방식의 리베이트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 회사도 모르게 리베이트를 하는 경우도 있나.

회사에선 규정대로 일하라고 한다. 규정을 어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위선에선 그저 눈감고 있는다. 영업사원이 하겠다고 하면 아무 말 안 한다. 본인의 의지로 하는 것처럼 판을 깔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되면 영업사원이 다 떠안는다. “회사에서 안 된다고 했는데 너 왜 그랬냐?”고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되는 거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다. 영업의 딜레마다. 영업사원은 머리 위에 숫자가 따라다니는 직업이다. 영업사원마다 타겟이 주어지고 만들어내야 하는 매출액이 있다. 숫자를 올리기 위해 다른 경쟁사와는 다른 영업방법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 볼펜, 메모지 같은 거 백날 갖다 준다고 해서 약 잘 써주겠나? 지원 잘 해주는 회사의 약을 처방해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 어떤 식으로 지원을 하는 가.

처음엔 약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시작한다. 저녁에 식사하며 제품 설명회를 갖곤 하는데, 그 자리에서 쓸 수 있는 금액이 1인당 1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의사 한 명에게 10만원 까지는 식음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강남의 웬만한 일식집 가격이 얼만 줄 아는가? 그 돈으로 택도 없다. 당연히 10만원 초과하고, 초과하는 돈은 내 돈으로 쓰거나 영수증을 조작할 수 밖에 없다. 또 의사들이 우리끼리 먹을 테니 와서 계산만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원수와 금액 맞춰서 영수증 끊는 것 때문에 골치 아프다. 법인카드를 빌려주는 경우도 있다.

- 픽업 서비스나 골프장 접대도 흔하다고 하던데.

그렇다. 골프장 접대는 회사에선 금지되어 있지만 영업사원 개인 돈으로 접대를 한다. 회사에서 받을 방법도 없다. 그냥 내 돈 꼴아 박는 거다. 픽업서비스도 많이 한다. 특히 학회나 행사를 지방에서 하는 경우에 많이 이뤄진다. 부산이나 경주에서 학회를 많이 하는데, 의사가 학회에 참석하면서 숙박이나 교통을 지원해줄 수 있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러면 내 대답은 “회사 규정상 안 된다”가 정답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나? 내가 거절하면 다른 제약사에 물어볼 것이고, 그럼 이후에 나의 영업은 어떻게 되겠나? 울며 겨자 먹기로 해줄 수 밖에 없다.

- 그런 경우, 의사 본인도 모르고 리베이트를 받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의사가 “혹시 숙소 지원이 가능한가”라고 물을 때, 규정상 가능한 것인지 몰라서 물어볼 때도 있다. 영업사원이 당연히 지원된다고 해서 리베이트와 상관없이 지원이 되는 줄 알고 받았다가 알고 보니 리베이트였다면 의사도 억울할 거다. 하지만 영업사원 입장에서 의사가 “이런 지원이 가능하냐”고 물을 때 규정상 안 된다고 거절할 수가 없다. 매번 거절하는 회사의 약을 잘 써주는 의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근본적으로 갑을관계가 갖고 있는 한계다.

이럴 바엔 깡만 해주는 식당을 차리는 게 낫겠다”

- 리베이트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도 천차만별일 것 같다.

3가지 부류로 나눠진다. 철저히 리베이트를 받지 않는 의사, 리베이트인 줄 모르고 받는 의사, 대놓고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의사, 이렇게 세 부류다. 원리원칙대로 리베이트를 철저히 거부하는 의사들도 많다. 약에 대해서만 알고 싶어 하고, 식사 자리 같은 제의는 거절하고 자료만 달라는 의사들이다. 반면 대놓고 요구하는 의사도 있다. 오늘 저녁에 술 약속 있어서 차를 안 가져 가니 출근 좀 도와달라고 하는 의사, 회식 값 대신 계산해달라고 하는 의사도 있다. 약 얘기는 밖에 나가서 하자고 하면 골프치자는 얘기다. 개원한 의사나 대학병원 의사나 비슷하다. 예전에는 카드깡을 해주는 식당을 이용해서 리베이트를 많이 했다. 룸살롱에서 법인카드를 쓸 수 없기 때문에 룸살롱이 만들어 놓은 유령식당(실제로 영업하지 않고 사업장 등록신고만 해놓은 곳)에서 결제를 하는 것이다. 제약업계뿐만 아니라 여러 업계의 검은 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동료와 애기하면서 “이럴 바엔 차라리 깡만 해주는 식당을 차려 수수료나 먹고 사는 게 낫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 그런 요구를 받으면 일하기 쉽지 않겠다.

일하면서 존경하게 된 의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의사도 많이 만났다. 갑을 관계를 이용해서 인간적으로 무시하고 문전박대 하는 의사가 종종 있다. 또 리베이트는 실컷 받아먹고 기대한 것만큼 매출에 도움을 주지 않는 ‘먹튀’ 의사도 있었다. 리베이트는 제약회사에서 시작한 것이고 제약회사의 책임이 크다. 하지만 청렴한 의사들만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변종처럼, 기형적인 리베이트 방식이 생겨나진 않았을 것이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 아닌가.

- 의사가 청렴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리베이트는 모든 산업에 존재한다. 유통, 건설업계에서의 리베이트가 더 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유독 의사들의 리베이트 건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지 생각해봐라. 의사는 사회 지도층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생명을 살리는 존재다.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청렴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들의 마음이다.

-리베이트가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솔직히 리베이트를 없애려면 영업사원을 없애면 된다. 리베이트 때문에 비난 받을 때마다 의사들은 영업사원 안 만나면 그만이라고 말하곤 한다. 약으로만 승부하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게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능한가. 모두가 수긍할 만한 규정을 정하고, 그 규정을 지키기 위해 제약업계와 의료인 모두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의료계와 제약업계, 함께 자정노력 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리베이트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올해 2월, 의사들이 더 이상 리베이트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동아제약 사건과 CJ법인카드 사건이 터지면서 큰 비난을 받은 후였다. 의협뿐만 아니라 대학교수나 종합병원 의사들이 주로 활동하는 의학회도 함께 나서 리베이트 자정 선언을 했다. 의사들이 직접 리베이트와 관련해서 내부관리와 자정 노력의 의지를 피력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동아제약 사건을 대하는 의료계의 모습은 그런 자정 노력과 동떨어져 있는 듯 해 의문이 든다. 현재 의료계에선 정부의 잘못된 약값 정책,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 중심 영업 관행, 낮은 의료 수가를 리베이트의 원인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리베이트에 있어서 의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사의 해당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가 허가 취소를 내리는 등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면서도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해서는 개선해 달라고 요구한다. 의료계가 자정 선언을 통해 밝힌 것처럼 리베이트를 받지 않겠다면 쌍벌제가 있든 없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쌍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의사의 명예와 자존심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는 부도덕한 행위를 한 의료인을 엄벌해야 맞는 것이다. 자정 노력의 의지는 이런 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항소가 남아있고 완전히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건 자체를 동아제약이 만들어낸 사기극이라고 몰아세우는 모습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 제약업계의 자정 노력 역시 필요하다.

물론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의사들에게 제약회사가 먼저 리베이트를 회유하는 경우도 많다. 정당하게 약으로 승부하면 리베이트는 필요하지 않다. 이는 정책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약업계는 정부에서 요구하는 연구개발에 전념하면 된다. 공정하게 만들어서 공정하게 홍보하면 아무 일 없다. 원칙대로 하면 된다. 하지만 리베이트로 연구개발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약이 나오지 않았다는 논리는 무리가 있다. 처벌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연구개발과 리베이트를 연결시키지 말고, 제약업계든 의료계든 적발되면 강하게 처벌하면 된다.

동아제약 사건에 대해 A씨는 “리베이트는 제약사와 의사, 정부, 모두가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라고 말하며 더 이상의 말을 아꼈다. 다만 현재 동아제약의 상황이 남일 같지 않다며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의료계에서 ‘응징’ ‘엄벌’이란 표현이 쏟아져 있는 가운데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못하고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듯한 동아제약의 모습을 보면서 씁쓸할 뿐이라는 A씨. 그에게 마지막으로 “리베이트가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갑을관계가 존재하는 한 리베이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기기사]

·[포커스]"리베이트,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2013/10/14] 
·약값의 비밀 …"정부, 환자 약값 차이 부추겨" [2013/10/14] 
·"식후에 드세요" 복약지도에 3833억원 지출 [2013/10/13] 
·"만성 B형 간염, 내성 없는 약으로 완치 가능하다" [2013/10/14] 
·‘살 빼는 마약’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오남용 심각 [2013/10/14] 

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위 기사는 중앙일보헬스미디어의 제휴기사로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중앙일보헬스미디어에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