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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왜 어머니는 제가 잠잘 때 들여다보지 않으십니까? 저는 아직 꿈을 꿀 줄 모릅니다. 왜 아버지는 제가 돈 쓰는 것을 물어보지 않으십니까? 저는 아직 돈을 쓸 줄 모릅니다. 왜 아버지나 어머니는 저와 얘기를 하려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아직 혼자 있을 줄을 모릅니다.』
어느 고등학교 교지에 실린 한 고교생의 작문이다. 『꿈을 꿀 줄도, 돈을 쓸 줄도, 혼자 있을 줄도 모르는』 우리 주변의 고교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런 남녀 중고생 5명이 지난 28일 서울의 일각 어둠침침한 하숙방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들은 자정이 넘도록 기타를 켜며 담배를 피우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들고는 영 깨어나지 못했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이들의 나이는 이제 겨우 16세와 18세.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형은 형답게, 동생은 동생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그래서 가도는 바르게 된다.』
주국 『역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결국 가족의 일원에서 벗어나 온 아이들은 이런 뜻하지 않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 소년들은 하나같이 모두들 가정의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가정을 떠나 오랫동안 객지생활로 보낸 소년,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자라는 소녀들-. 거의 예외가 없다. 이들은 가정교사도 있었고, 집안의 생활도 비교적 풍족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가정이 가정답지 않은 것이 이들을 그늘로 안내했다. 새삼 가정의 의미를 경각 시킨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어제의 같은 세대와는 엄연히 다른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템포가 빠른 그야말로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충격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성을 흐리게 하는 사건들과 새로운 현상들이 걷잡을 수 없이 연발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가정의 입지는 귀중하다. 이들에게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가정은 조용히 깨우쳐 주어야 한다. 그것은 부조의 애정일수도 있고, 인간관계의 아름다운 유대일수도 있다. 도대체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원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때, 그곳은 재미없고 무의미한 장소로 전락하고 만다.
젊은 세대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세상이 그립다. 애정은 바로 가정에 살고 있다. 왜 소년·소녀들은 그곳을 떠나 길거리를 방황하며, 외로와 하고 낯선 골방에서 기타를 켜려고 하는가. 우리는 이 찬물을 끼얹은 사건을 보며 새삼 주변을 두러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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