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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은 수출경제 기초체력 … 수요 15% 축소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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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원전은 한국 경제 발전의 숨은 견인차였다. 1970년대 후반 시작된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성공하고, 90년대 이후 성공적으로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는 데 원전이 제공한 값싼 전기가 큰 몫을 했다. 매장된 에너지 자원이 거의 없고 국토가 좁아 수력과 화력 발전을 크게 늘리기 힘든 한국에 딱 맞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정부가 만든 제1차 에너지 기본계획에 원자력의 비중을 41%까지 확충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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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기점으로 원전의 숨겨진 비용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원전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신화가 깨졌다. 여기에다 원자력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까지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됐다.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전기로 인해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인 정유·철강 산업의 비중이 과도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민·관 합동 워킹그룹이 원전의 비중을 현재(26.4%)와 비슷한 22~29%의 범위에서 관리토록 권고한 것도 이런 점들을 반영한 것이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계획이 실현되려면 전기 수요를 크게 줄여야 한다. 2035년 예상되는 수요의 15%까지 줄이겠다는 게 워킹그룹의 목표다. 수요 감축의 핵심은 산업용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산업용 전력 판매량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3년 5월 현재 산업용으로 소비된 전력은 221억3300㎾h로 전체 공급량(374억6000㎾h)의 59.1%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215억3400㎾h)에 비해 2.8% 증가했다. 지난여름 전력 위기 때 국가적인 절전 캠페인으로 가정용 수요는 줄였지만 산업용은 오히려 증가했다. 일종의 ‘전기 중독’이 일상화돼 있는 것이다. 전력이 수출 주도형 경제구조의 기초체력을 뒷받침하고 있는 상태에서 산업용 전력을 확 줄이거나 현재 수준으로 묶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에도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전체 발전량 대비 원전의 비중을 20%대에서 관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전력 수요가 증가하면 새로 원전을 지을 수도 있다”고 퇴로를 열어두고 있다. 하지만 원전 부지 확보조차 힘든 상황에서 새 원전을 짓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워킹그룹 참가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경제적 효과를 키우기 위해 사회적 갈등을 무시하기가 더 이상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산업계는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3일 “산업용 전기요금이 특혜라는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2000년 이후 전체 전기요금은 평균 44.4% 올랐는데, 산업용은 78.2% 인상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전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낮다”고 주장한 데 대해 “이미 산업용 요금은 원가의 104.5%”라고 맞받았다. 국제 비교 자료도 제시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주택용 전기의 75% 수준인데, 이는 일본 70%, 프랑스 66%, 영국 60%, 미국 56%, 독일 44%보다 크게 높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또 “한국 산업계의 에너지 효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철강제품 1t을 생산할 때 한국이 에너지 100을 쓴다고 가정하면, 일본은 104, 미국은 118, 캐나다는 124에 이른다는 데이터도 공개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야당 의원은 정반대 입장에서 반발한다. 에너지정의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워킹그룹의 원전 비중 목표는 사실상 원전 건설을 지속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하나(민주당) 의원은 “원전 비중 축소는 착시 현상”이라며 “산업부 국감에서 민·관 워킹그룹 논의 과정에 정부 측의 입김은 없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부터 추진해온 원전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국 원전산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 때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베트남 방문 때 원전 수출을 강조했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계획 변경으로 외국 정부가 건설 및 유지 관리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워킹그룹 강승진(한국산업기술대 교수) 수요분과장은 “그동안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정책을 추진했다면, 이번에는 사회적 대타협으로 권고안을 마련한 데 의의가 있다”며 “향후 정부가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얼마나 잘 얻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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