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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유럽행 … 난민들 주검 쌓이는 슬픈 지중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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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중해가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내전과 정정 불안에 시달리는 시리아·소말리아·에리트레아인들이 바다로 불법 이민 길에 나서고 있으나 유럽에 닿지도 못한 채 지중해의 거센 풍랑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이런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비인간적 상황을 개선하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유럽 국가들이 고개를 돌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럽인들의 삶을 더욱 고달프게 하는 불법 이민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인들의 무모한 해상 불법 이민 시도에 따른 지중해의 비극은 계속될 전망이라고 BBC방송이 전했다.

 지난 11일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섬 동남쪽으로 105㎞ 떨어진 해상에서 시리아·팔레스타인 사람을 가득 태운 고무보트 2대와 배 1척이 조난당했다. 이탈리아와 몰타 구조대는 200여 명을 구조하고 34구의 시신을 건져 올렸다. 이들 배에는 400명가량이 탄 것으로 추정돼 희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에서 113㎞ 떨어진 람페두사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유럽으로 가는 길목으로 여겨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람페두사의 비극’과 관련해 12일 트위터에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너무 자주 안락한 삶에 눈이 멀어 우리 집 문 앞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목도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조셉 무스카트 몰타 총리는 이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유럽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지중해에 난민 묘지를 만들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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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피해 시리아·소말리아인 탈출행렬

 람페두사 인근에서는 지난 3일에도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500여 명을 실은 배가 전복돼 최소 359명이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람페두사에서 800m 떨어진 지점에서 엔진 고장을 일으킨 난파선은 지나가는 배에 구조 요청을 하려고 갑판 위에 불을 지폈다가 배 전체에 불이 번지며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지난 11일 이집트 지중해 연안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불법 이민선이 가라앉아 적어도 12명이 숨지고 116명이 구조됐다.

 UNHCR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려던 난민 희망자 중 1500명 이상이 익사했거나 실종된 상태다. 2012년에도 약 500명이 실종됐거나 숨졌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불법 이민을 시도한 아프리카인 1만9142명이 지중해에서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올 들어 지난달 30일까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은 모두 3만100명이다. 국적별로는 시리아·에리트레아인이 75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소말리아인이 3000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가려는 이유는 이들 나라가 내전과 정정 불안, 독재 정치로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올해 이탈리아로 가장 많은 불법 이민자가 떠난 시리아는 2011년 3월부터 이어진 내전으로 11만 명(시리아인권감시단 추정) 이상이 숨지는 등 극도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에리트레아도 독재 정권의 강압 통치로 정치적 자유 등을 꿈꾸는 사람들의 유럽행이 늘었다. 소말리아·리비아 등에서도 내전 등으로 얼룩진 모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이들을 태운 배는 열악하기 그지 없다. 불법 이민 주선자들은 난민 희망자들에게 돈을 받은 뒤 지중해를 건너기에는 위험한 고무 보트나 무동력선 등에 불법 이민자들을 실어 보내곤 한다. 그러한 배로는 지중해의 풍랑을 견디기 역부족이다.

 운이 좋아 불법 이민자들이 유럽에 도착해도 행복이 기다리진 않는다. 불법 이민자들을 수용한 람페두사 난민수용소는 열악한 환경으로 지난해 7월 유럽의회에 제소되기도 했다. 방 하나에 여러 가족들이 살며 전기나 물·식사 등이 부족한 환경에서 지낸다. 그럼에도 EU 공동의 국경 관리 기구인 프론텍스의 올 예산은 8500만 유로(약 1240억원)로, 2011년(1억1800만 유로)에 비해 30%가량 깎였다. 유럽 경제 위기로 회원국들의 재정 형편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고무보트 불사 … 25년간 1만9000여 명 숨져

지난 11일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불법 이민자 400여 명을 태운 고무보트 2대와 배 1척이 전복 됐다. 구조된 시리아 불법 이민자가 12일 몰타 발레타 항에 정박한 함선에서 내리고 있다. [몰타 AP=뉴시스]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난민수용소를 떠나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이 경기가 좋았을 때에는 건설 인부 등 일용직으로 돈벌이를 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 악화로 그마저도 힘들다. 이에 따라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은 이탈리아 등을 거쳐 경제 사정이 상대적으로 낫고 반이민 정서가 약한 북구의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네덜란드·영국 등으로 가길 원한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도 최근 이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독일·노르웨이·아일랜드 총선에서 불법 이민에 반대하는 우파가 연이어 승리했다. 프랑스에서 최근 시행된 여론조사에서는 34%의 프랑스인들이 반이민 공약을 내건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주장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유럽에 보수 우파가 득세한 데는 경기 침체에 따른 사회 불안으로 유권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처리를 놓고 유럽 국가들의 입장도 엇갈린다. 난민들의 유럽 관문인 이탈리아·그리스·몰타는 EU의 현행 난민 시스템이 그들에게 지나치게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불평한다. EU의 더블린2 규정에 따르면 난민 신청은 불법 이민자가 처음 도착한 EU 국가를 통해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제난 유럽, 반이민 목소리 … 대책 골머리

 특히 이탈리아는 불법 이민자 유입에 골치를 앓고 있다. 이탈리아는 경제 침체로 정부 예산이 쪼그라들어 불법 이민자를 돌보는 데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는 불법 이민자 문제를 오는 24~25일 EU 회원국 정상 모임인 유럽이사회에 제기할 계획이다. 레타 총리는 프랑스의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들이 이탈리아로 오고 있어 우리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고 말했다.

 EU 집행위원인 세실리아 맘스트룀은 “난민 신청자의 90%가 EU 10개국에 집중돼 있다”며 “‘람페두사 비극’ 이후 모든 EU 국가들로부터 연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구체적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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