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마땅한 한 연좌제 폐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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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진나라의 상엽은「십오제」를 창안하여 치세의 편법으로 삼았다한다. 십은 10이요, 오는 5이니 백성을 십오라는 단위「그룹」으로 묶어 그 중의 한사람이라도 죄를 범하면 나머지 사람 모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제도였다.
이것이 당률과 명·청률에 계승되어 훗날 우리 나라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말끝마다 자랑하는 우리 민주헌법의 은총(?)아래서도 아직까지 그러한 연좌제가 생동하고 있었다면 이 무슨 역사의 복습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연좌제를 폐지한다는 내무부장관의 지난번 발표는 실인즉 반가움 보다 회의를 더 많이 갖게 한다.
건국 23년에 접어드는 오늘까지 연좌제를 활용해 왔음을 시인하는 솔직성을 나무라기는 미안하다. 국가안보라는 지상과제 때문이 있다고 하지만 법에도 없는 제한을 그토록 당연한 듯이 감행했느냐-이런 추궁도 면제해둔다.
이미 정부는 그전에도 몇 번인가 연좌제를 폐지한다고 했는데, 그러고도 아직까지 존속시켜왔다면 결국 지금까지는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이 말을 묻고싶다.
이유야 어쨌든 법에 없는 연좌제실시가 위법인 이상 국민 앞에 사과는 못할망정 위법처사의 당연한 시정을 무슨 선심처럼 내걸고 있는가- 이 말도 묻고싶다.
그런 것이 여당·정부의 공약에 한몫 끼였다는 게 「난센스」이고, 하필이면 양대 선거를 앞둔 지금에 와서 「단행」을 발표하다니 오얏나무 밑에서 갓 끈을 고쳐 맨 격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시기야 어떻든 연좌제 폐지는 당연한 일이고 또 잘한 일이다. 조용히, 그리고 정말로 폐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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