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복 바지에 후드티 ‘밤마실 스타일’이 진짜 공항패션 아닐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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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21면

요즘 웬만한 연예 기사에 액세서리처럼 붙는 게 바로 ‘패션’이다. 시상식에서 스타일을 뽐내는 레드카펫 패션은 고전 중의 고전. 스타들이 문상을 가면 ‘조문 패션’, 결혼식을 가면 ‘하객 패션’이란 말이 붙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게 ‘공항 패션’이다. 해외에선 딱히 카테고리조차 없는 미개척 분야라는데, 실제 구글에서 airport fashion 혹은 style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우리나라 스타들이 관련 포스팅을 도배하는 수준이다.

스타일#: 저스틴 비버의 입국 옷차림

8일 방한한 캐나다 출신의 아이돌 가수 저스틴 비버의 입국 장면은 그래서 좀 놀랍기도, 의아하기도 했다. ‘비버 피버’, 번역하면 ‘비버 앓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세계적인 스타인 그가, 더구나 트위터 팔로어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그가 공항 패션으로 선보인 옷이 지극히 평범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엉덩이 골이 보이거나 속옷이 드러나게 내려 입는 바지’도 입지 않았다. 대신 7부 운동복 바지에 후드 티셔츠, 스냅백을 눌러 쓰고 온 것이 전부였다. 공항 패션의 핵심이라는 가방조차 들지 않았으니, 그 모습은 그냥 ‘동네 밤마실 나온 청년처럼’ 편안함만 추구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

처음엔 ‘이게 뭐지’ ‘진짜 저스틴 비버 맞아?’ 싶었다. 설마 이 정도 협찬밖에 받지 못했나 의구심도 들었다. 적어도 우리 기준에선 그랬다.

공항 패션이 본격화한 건 3~4년 전쯤. 역할과 노래에 맞춰 입어야 하는 방송 출연 의상이 아닌 ‘스타가 사생활에서 입는 옷’을 보는 재미에 구경꾼이 몰렸다. 스타의 리얼리티를 훔쳐보고 싶은 심리, 게다가 화장기 없는 얼굴, 편안한 복장을 입은 그들을 보면서 ‘쟤네들도 별 수 없구나’라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공항 패션의 전제조건이 일단 스타가 공항에 나타나야 하는데, 이 점에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K팝 인기 덕에 아이돌들은 수시로 공항을 들락거리지, 여신급 여배우들은 화보 촬영에다 브랜드 행사에 종종 초대받지, 그 자체가 그림인 연예인 커플들이 잇따라 백년가약을 맺고 신혼여행 떠나지…. 그야말로 공항 패션이란 이름으로 들먹일 만한 먹잇감들이 무궁무진하게 쏟아졌다.

스타가 있는 곳에 광고가 있는 법. 자연스럽게 브랜드들의 협찬 통로가 됐다. 신상품을 입어야 하니 20도가 넘는 날씨에도 트렌치코트와 가죽재킷을 걸치고 나타나야 하고, “가방을 어떤 모양새로 들어야 할지 미리 알려주는” 브랜드의 요청에 따라 화보 같은 포즈도 구사해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는 카메라가 없는 듯 무조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 그렇게 찍힌 사진은 ‘센스 넘치는 공항 패션’ ‘직찍 공항 패션’이란 제목으로 기사화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슨 브랜드를 입고 걸쳤는지 친절히 알려준다. 가끔 ‘그 브랜드가 뭐예요’라는 문의형 글도 발견되지만 5분도 안 돼 너무나 명쾌한 답이 올라오는 걸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의 한 방식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처럼 ‘공항 기획 패션’이 돼 버린 공항 패션인지라 비버의 옷차림은 더욱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고로 그런 ‘밤마실 스타일’이 공항 패션의 모범인데도 말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한 편안함을 취할 수 있는 복장, 발이 부어도 괜찮을 넉넉한 신발, 찬 기운이 감도는 기내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여분의 옷들이 비행기를 탈 땐 가장 적합한 드레스 코드라는 걸 잊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간 수없이 보아 온 ‘화보나 다름없는 공항 패션’이 얼마나 리얼리티가 떨어지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다리를 거의 다 드러내는 쇼트팬츠와 미니스커트, 꽉 끼는 청바지, 쉽게 구겨지는 실크 블라우스, 발목부터 죄는 하이힐 부츠 등이 딱히 튀는 것도 아닌데 왜 부자연스럽게 보였는지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

리얼리티를 원하지만 진짜 리얼리티를 볼 수 없는 공항 패션. 차라리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감을 주면 어떨까. 수퍼모델 출신의 패셔니스타 하이디클롬처럼 잘 차려는 입되 컬러풀한 목베개를 목에 하나 걸쳐 주는 거다. 적어도 리얼리티를 살려주는 액세서리로 그만한 게 없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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