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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석학 아탈리가 꼽다, 내 삶을 이끈 23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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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자크 아탈리, 등대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청림출판
768쪽, 2만9800원

독서에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과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작가를 통해 ‘재구성 당하는’ 신기한 체험이 있다. 독서의 쾌락과 신비가 극대화되려면 독자와 작가가 손발이 맞아야 한다.

 우선 작가 쪽을 살펴본다면 『등대(Phares)』를 쓴 자크 아탈리는 완벽에 가깝다. 그는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선정한 ‘세계 100대 지식인’이다. 유럽 최고의 지성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다. 20개국어로 번역된 아탈리의 책 50여권은 각기 10만 부 이상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다.

 『등대』에는 아탈리가 ‘인류라는 신전(神殿)의 기둥들’이라고 부르는 역사적 인물 23명이 나온다. 공자·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다윈·에디슨 같이 대중적 위인뿐만 아니라 모한다스 간디에게 깊은 영향을 준 슈리마드 라즈찬드라(1867~1901), 수백 년 앞선 르네상스형 인간인 힐데가르트 폰 빙엔(1098~1179), ‘알제리 민족의 아버지’ 압델카데르(1808~83) 같이 생소한 인물도 등장한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크 아탈리(70)는 동서양 위인 23인에 대해 “모두 비극적 불운을 겪었고, 설욕하려 애썼다. 우연이 지나치려 할 때 그 우연을 붙잡는 특별한 능력을 보였다”고 썼다. [중앙포토]

 아탈리의 인물 선정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모든 대륙, 모든 세기가 포괄됐다는 게 눈에 띈다. 철학자·과학자·지도자·예술가·혁명가 등 직업군도 다양하다. 아탈리에 따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옳다’는 교만에 가까운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탈리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확신하면 아탈리도 빠질 수 없다. 그는 이 책이 미래의 출간 장르를 제시한다고 자신한다. 『등대』는 단편 소설 형식을 띤 전기들의 모음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의 등대가 된 위인들의 삶의 궤적을 한 명씩 풀어낸다. 아탈리는 『등대』를 ‘빠진 게 없는 극소형(極小型) 전기(microbiographie exhaustive)’라고 표현한다. 세상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23인의 삶을 연대순으로 기록했는데 업적과 과오, 성격과 생김새, 비운과 행운 등에 대해―아탈리의 주장에 따르면―중요한 것은 빠트리지 않고 기술했다.

 독자 측면을 살펴본다면, 호불호(好不好)가 극명하게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 편만 더, 한 편만 더’하다가 밤을 꼬박 새울 수도 있다. 반면 수면제 대용이 될 가능성도 꽤 크다. 동서고금을 고속으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공자와 프랑스 작가 자크-베니뉴 보쉬에(1627~1704)이 공통적으로 한 생각은?’이라는 질문에 호기심이 발동하는 독자라면 아탈리와 ‘독서 궁합’이 잘 맞을 것이다.

 이 책은 고급 자기계발서 구실도 한다. 애초에 아탈리가 이 책을 저술한 이유는 다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게 막을 때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까.”

 23명의 거인들은 “우리들의 삶을 선용(善用)하는 데 필요한 성찰거리”를 제공한다. 마지막 장을 장식하는 ‘아프리카의 현자’ 아마두 함바테 바(1900~91)의 경우에도 그렇다. 『등대』는 그가 말한 이 한마디로 끝난다. “후세에 길이 남을 사람이 되고 싶다면, 참는 사람이 되라. 선한 사람이 되라. 살아 있는 사람이 되라.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

 아탈리는 세계적인 석학일 뿐만 아니라 활동가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구현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희곡과 소설을 쓰고 작사를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이기도 하다. 한꺼번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파이낸셜타임스(FT)가 창간 125주년을 기념해 펴낸 명사 인터뷰 모음집인 『FT와 점심을(Lunch with the FT)』에 따르면 아탈리는 하루에 3시간씩만 잔다.

 부제가 ‘24개의 운명(24 destins)’인 이 책의 원본은 23명이 아니라 24명의 인물을 다뤘다. 우리말 번역본에서 뺀 인물은 일본 왕 메이지(明治, 1852~1912)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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