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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안현수는 잊어 주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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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윤호
논설위원

지난해 10월 캐나다에서 2012~2013시즌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가 열렸을 때였다. 남자 1000m에서 러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를 전한 중앙일보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안현수는 잊어주시라, 빅토르 안 금빛 질주’.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얘기였다. 그가 누구인가. 2006년 토리노 올림픽 금메달, 세계 선수권대회 5연패의 대기록을 지닌 쇼트트랙의 황제다. 그가 2년 전부터 러시아 선수로 뛰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가 6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끝난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색깔별로 하나씩 3개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우리 남자 대표팀은 은 하나, 동 둘을 땄다. 안방에서 쇼트트랙 강국답지 않은 성적으로 체면을 구겼다. 그런데도 한국 선수 몫이 될 수 있었던 금메달을 그가 가져갔다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팬들은 그가 러시아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아닐까. 파벌, 서열, 구타, 왕따, 부상, 팀 해체, 실업, 무관심….

 안현수를 빅토르 안으로 만든 건 러시아의 파격적인 영입 조건만이 아니다. 단초는 우리가 제공했다. 그 ‘우리’엔 파벌 싸움에 찌든 빙상 지도자들, 메달 딸 때만 관심 보이다 만 언론, 엘리트 스포츠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두루 포함된다.

 스포츠계에선 유명 선수를 귀화시켜 단번에 자기 나라 성적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적잖다. 국적을 바꿔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 나가려는 선수도 많다. 실제 중국 탁구선수가 우리나라로 귀화했고, 일본과 호주의 국가대표가 된 우리 양궁 선수들도 있다.

 얼마든지 쌍방향으로 일어나는 일인데도 우리 선수가 외국에 귀화할 때엔 여론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애국심이 약하다, 기술이 유출된다 하는 게 흔한 반응이다. 하지만 운동 하나에 인생을 건 스포츠 선수들에게 지사급 애국심을 요구하기는 어렵다. 안 선수는 귀화 직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눈치 안 보고 살고 싶어요. …제 가슴에 어느 나라 국기가 달리든 크게 상관 안 해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그의 말에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공감했을 듯하다.

 그에 비해 기술 유출에 대한 걱정은 한마디로 착각이다. 스포츠에 무슨 특허 기술이나 지적재산권이라도 있나. 그 걱정을 할 정도면 태권도의 해외 보급도 당장 중단해야 하지 않나.

 흔히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고 하지만, 스님도 마음에 드는 절을 골라 갈 수 있다. 훌륭한 스님 모으는 것도 절의 경쟁력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융숭히 모셔와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일은 스포츠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경제·과학·문화 등 온갖 분야에서 꼭 필요하다. 인재는 한정돼 있으므로 결국 나라끼리의 경쟁이요, 제로섬 게임이다.

 그럼 우리는 우수한 외국인을 받아들여 우리 사람으로 쓸 태세가 돼 있나. 복잡하게 따질 것 없다. 국적법 제5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반귀화의 5개 요건 가운데 두 번째가 ‘품행 단정’이다. 도대체 단정한 품행이란 무엇인가. 한국인들은 모두 품행이 단정하므로 그에 맞추라는 얘기인가. 범죄 전력 검증에 더해 굳이 품행을 보는 이유를 모르겠다. 애매하게 트집 잡기 딱 좋게 돼 있지 않나. 성형 대국답게 ‘용모 단정’이라 했다면 그나마 웃고 넘기겠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이 되고 싶어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빠져 있다. 여러 나라가 귀화 외국인에게 헌법 질서를 준수할 것을 요구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조항이 없다.

 지난 휴일 빅토르 안의 질주는 그 같은 우리의 배타성과 폐쇄성을 향해 시원하게 한 방 날렸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왠지 숨구멍이 트이는 듯한 이 느낌은 또 뭔가. 우리가 스스로는 깨지 못할 단단한 외피에 갇혀 있다는 뜻인가.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