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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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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강일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난주 금요일까지 내가 생각했던 이번 칼럼 주제는 이거였다. 지난주 내내 이 나라 높은 분들이 ‘배신’ ‘거짓말’ ‘의심’ 등 험한 말을 총동원해 서로 공격하고, 더 추해지려고 경쟁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인간의 작태에 넌더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말엔 요즘 한창인 소국(小菊)이나 사다가 인간에게서 지친 마음을 꽃에서 위로받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말 동안 이런 비뚤어진 마음을 되돌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지난 금요일 밤, 선배의 부음이 전해졌다. 김동균 코리아중앙데일리 편집인. 내겐 처음부터 베테랑 사회부 기자였던 선배는 내 어리바리한 수습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전폭적으로 응원해 줬던 분이었다. 선배의 특장기 중 하나는 이를 드러내고 예쁘게 활짝 웃을 줄 알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중장년 남자들에게선 쉽게 찾기 힘든 능력 중의 하나다. 칭찬의 능력도 탁월했다. 사실 모든 칭찬에 코끼리가 춤을 추진 않는다. 그의 인품과 진정성과 능력에 따라 코끼리는 춤을 추기도 하고 않기도 하는데 선배는 춤추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얼마 전, 항암치료 중 출근했던 선배는 활짝 웃는 얼굴로 내 칼럼들을 거론하며 “네가 최고”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그럴 리야 있겠냐만, 그래도 선배의 칭찬을 들으면 나는 늘 안심이 됐다. 그날도 그랬다. 그래서 선배가 아프다는 걸 깜빡 잊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는데….

 주말 저녁엔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렸던 가수 인순이 공연에 갔다. 나는 평소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의 철저하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삶의 태도는 늘 배우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 위크앤 팀장 시절, 유명인과 함께 백두대간을 오르는 코너가 있었다. 한번은 취재 이틀 전, 가기로 했던 모 가수가 갑자기 못 가겠다고 한다며 담당기자가 사색이 돼 달려왔다. 그때 내게 떠오른 사람이 선생이었다. 전화로 사정을 설명했다. 그 전에 그에게 ‘백두대간에 한번 가자’고 한 적이 있었다. ‘언제 점심 먹자’는 것과 같은 말이었는데, 그는 이미 약속했던 일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곤 전남 순천에서 촬영을 마치고 강원도까지 가로질러 밤 12시 무렵에야 취재 현지에 도착해 다음 날 새벽 산에 올랐다.

 그의 주말 공연은 말 그대로 긍정적 메시지의 확산이었다. 공연 중 그가 말했다. “서로 위로하며 산다면 우리도 잘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산다면 나이가 좀 먹는다고 대수겠습니까.” 맞다. 돌아가신 선배가, 살아 있는 인순이 선생이 내 삶에 주었던 위로를 꽃이 대신할 순 없다. 주말을 못 넘기고 생각을 바꿨다. ‘그래도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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