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서약한 우리 엄마 시신이라도 한번 봤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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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엄마가 신청한 장기서약서를 봤어…. 근데 어떡하지, 아직도 엄마 시신이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어…."

대구지하철 참사로 실종된 이순자(48.여.대구시 달서구 신당동)씨를 애타게 찾고 있는 딸 전은영(23.계명대 영문학과2) 양의 글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27일 유가족대책위 홈페이지(www.daegusubway.or.kr)의 추모게시판에 오른 이 글은 全양이 '엄마…잘 있는 거지?'란 제목으로 어머니에게 부친 사모곡(思母曲)이다.

李씨는 "내가 죽은 후 시신과 장기를 필요한 사람을 위해 써달라"며 2000년 10월 19일 경북대 의과대학에 시신과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 1997년 남편과 헤어진 뒤 딸과 단 둘이 살아오던 李씨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자신이 죽을 경우 혼자 장례를 치러야 할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서였다. 시신을 기증하면 병원 측에서 장례를 치러준다는 사실을 알고 내린 결정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李씨는 시각장애인(4급)이었다. 이혼 직후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 '눈뜬 장님' 신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딸아이 뒷바라지 등을 위해 아기 봐주기.봉투 붙이기 등의 일을 해왔다. 全양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자금과 생활비를 보탰으나 너무 힘에 겨워 지난해 3월 휴학하고 출판사에 취업했다.

생활비.학자금을 마련하느라 어머니가 카드회사에서 빌린 8백만원에 대한 빚 독촉을 모른 채 하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엔 청와대 신문고에 "지금 형편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으니 선처해달라"는 글을 올려 청와대 주선으로 카드회사 빚을 3년간 나눠 갚도록 배려를 받기도 했다.

全양은 "카드 빚 문제가 해결돼 얼마 안되는 월급이지만 맛있는 음식도 해드리고 좋은 옷도 사드리려고 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全양은 지난 20일부터 사고대책본부가 있는 시민회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실종자들의 사진을 스캐너로 떠 확대.복사하는 일을 하다 보면 밤을 지새우기 일쑤다. 유가족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붙인 뒤 오후엔 유가족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낸다.

"혼자 슬퍼하고만 있기엔 가슴이 너무 아파 자원봉사에 나섰어요. 엄마랑 같이 가신 모든 분들을 함께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엄마도 그러길 바랄거예요."

사고가 난 지 열흘이 지나도록 李씨의 시신은 아직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全양은 "엄마의 휴대전화 위치확인 장소가 중앙로역으로 나왔다"며 "통신비를 아끼려고 발신서비스를 중지하고 수신만 되도록 해놓다 보니 통화도 못한 채 이별하게 됐다"며 울먹였다.

李씨는 사고가 난 지난 18일 친정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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