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들의 타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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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새롭게 임기를 시작한 1973년. 메이저리그도 획기적이고 놀라말한 제도가 도입됐다.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는 '지명타자'가 그것이다.

당시 커미셔너였던 보위 쿤은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가 같이 시행하기를 바랐으나, 내셔널리그는 끝까지 수용을 거부했다. 결국 전통을 지킨 내셔널리그의 투수들은 지금도 타격을 계속하고 있지만, 개인의 능력차는 크게 벌어지고 있다.

투수의 타격능력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내용이지만. 잘 던지고, 잘치고, 잘 뛰는 선수들에게 인심이 후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역사적으로도 월터 존슨, 베이브 루스,돈 드라이스데일(이상 명예의 전당 헌액)같은 대투수들은 20승과 함께 3할이 넘는 타율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은 대부분 1930년대 이전에 수립됐고, 70년과 71년의 밥 깁슨과 캣피시헌터의 기록이 가장최근일만큼, 전무한 실정이다.

그나마 마이크 햄튼은 그런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고 있다. 2002시즌, 햄튼(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은 0.344의 타율을 기록했고, 3개의 홈런과 5타점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7개의 홈런과 16타점을 기록하는등 각 팀의 대타전문만큼이나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은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랜디 존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내셔널리그에서 첫 타석에 들어선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타격폼은 팬들에겐 쉽게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됐다.

지명타자제도가 시행되기전 타격실력이 형편없었던 밥 벌(은퇴)같은 투수들에겐, 아메리칸리그의 변화는 '유토피아'의 탄생이었다. 벌이 투수로서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은 1962년. 시카고 컵스 소속으로 시즌을 뛰며 70타석을 소화한 그는 단 한개의 안타로 치지 못한채, 타율 '0'을 기록했다.

그나마 볼넷과 희생플라이로 얻은 2득점, 1타점이 없었다면 삼진(36)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0'이라는 숫자를 새겨넣을뻔 했다. 그러나 벌의 기록은 73년 이전의 기록이며, 벌은 66년 은퇴해, '지명타자'제도'의 달콤함을 맛보지 못했다.

지명타자'제도를 시작한 이후 최악의 시즌타율은 '텍사스 특급' 놀란 라이언(명예의 전당 헌액)의 0.057이다. 라이언은 통산타율도 0.110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올렸고, 852번 타석에 들어 371번 삼진을 당하는 놀라운 삼진율을 기록했다. 통산 311승을 올린 톰 시버(명예의 전당 헌액)도 1976년엔 0.85라는 끔찍한 타율을 올렸고, 게일로드 페리(명예의 전당 헌액)도 79년 시버와 같은 0.85의 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최악의 타율을 기록중인 역대 25명의 선수가운데, 73년이후에 기록된 성적은 단 4차례에 불과할만큼, 내셔널리그 투수들은 타격을 해야한다는 것 자체에 큰 부담을 갖고있지 않다. 아주잘치지는 못하지만, 최악일만큼 나쁘지는 않다는 것이 최근의 투수들이 보여주는 타격이다.

왼손투수와 왼손타자의 대결이 익숙함과 낮설음의 싸움이라고 볼때, 투수의 타격도 시간이 흐를수록,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지지는 않을런지-.

Joins 유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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