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제자는 필자>|<제5화> 동양극장 시절 (16)|박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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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파 연극의 기적>
숨이 차니 쉴 겸해서 우스운 얘기 한 토막을 하겠다. 송해천이라고 한때 동양극장 전속이던, 「동극좌」에도 있었던 이 친구가 지방 극단에 있을 때 일이다.
소도구라는 것을 요새는 소품이라고 하지만 이 시시껍절한 물건들이 연극에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도구를 맡은 사람은 연극 관계자 중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고 있지만 사실한 중요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으로 다니려면 이 사람의 노고와 활동이 크다. 극장에서 짐을 풀기 전에 이 사람은 술집·밥집·떡집·동네 집으로 다니면서 필요한 소도구를 빌어 오고, 만들고, 장만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일 먼저 그 지방에서 「초대권」이라는 공짜 표를 뿌리는 사람도 이 사람이다. 남의 집에 가서 크건 작건 간에 물건을 빌리려면 그 물건의 값어치 여하에 따라 초대권이라는 공짜 표의 장수도 달라서 한 장·두 장·석 장 내지 다섯 장, 이렇게 주고 물건을 빌어야 하니까 상당수의 초대권이 그 사람 주머니에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 이 초대권의 매력이란 홋 볼게 아니어서 지방에서는 매표구에서 산 표를 내밀고 들어가기보다는 초대권을 내밀고 들어가야 으시댈 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극단이 그 지방에 가면 우선 흥행 허가라는 것을 경찰서에 가서 받아야하니까 봉투에 몇 십장 얌전히 넣어 절하며 바쳐야 한다. 이 밖에도 그 지방 권력층에 들러야 하며 극장 관계자며 그 지방 유지에게 선사해야한다. 그 때문에 문간에서 초대권을 가지고 들어가면 극단 측은 상을 찡그리지만 그 자신은 그 지방의 권력층 아니면 유지로 뽐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일반 표를 안 사고 초대권을 사 가지고 오는 얼간이도 있다. 그뿐 아니라 인기 깨나 끄는 극단이면 초대권이 행세를 한다.
또 초대권은 유가 증권으로도 한 몫 하니까 소도구 보는 사람이 온종일 물건을 얻으러 다니다가 출출하면 술집에나 밥집에 가서 그거 몇 장 주고 밥이고 술이고 푸짐히 요기도 할 수가 있다. 송해천이가 어느 극단에 있을 때 어떤 지방에서 연극을 하는데 악한을 육혈포로 쏘아 넘어뜨리는 신나는 장면이 있었다. 여기서 다시 설명을 해야겠는데 무대에서 총을 들이대면 『꽝』하는 총소리는 소도구 보는 사람이 아이들 장난감 딱총 화약을 오려서 쇠망치에 동여매 놓고 그때 가서 타이밍을 맞춰 벽돌이건 무어 건 거기에 망치를 내리치면『꽝』 『땅』하고 총 쏘는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날이 그 지방 첫날이라 「소도 구원」이 종일 물건을 얻으러 다니다가 출출해서 이 초대권 몇 장을 소비했었다. 그리고 무대 옆구리에서 망치를 쥐고 「땅」때릴 장면이 오기를 기다렸다. 송해천은 무대에서 열혈 청년으로 악한과 논쟁 끝에 만 부득이 정당 방위라는 법에도 안 걸리는 경우에 당하여 『에잇, 나쁜 놈아, 내 정의의 총을 받아라』하고 그 악한에게 총부리를 대었고 힘주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불발탄이었다. 당황한 송해천이 『에잇, 에잇…』하며 두번 세번 힘주어 총부리를 악한에게 대었으나 소리가 안나 죽지 못하는 악한도 안타까왔다.
무대 뒤에서는 난리가 났고 객석에서는 맥이 빠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능란하고 여유 있는 송해천 인지라 『허, 이 총이 고장이 났나?』하고 총구를 거꾸로 제 눈에 대고 들여다보다가 『막혔나 보군』하고 훅 총구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그때 무대 뒤에서는 법석을 하고 소도 구군을 찾으니 위치는 제가 맡은 정 위치에 앉아 망치를 잡고 안락하게 코를 골고 있는게 아닌가. 저녁때 초대권 몇 장으로 막걸리 몇 사발을 들이켠 것이 뒤늦게 작용한 모양이다. 화가 상투 끝까지 뻗친 무대 감독이 발길로 찼다. 깜짝 놀란 소도 구군, 얼떨김에 망치를 내려 갈겼다.
이때가 바로 송해천이 『총구멍이 막혔나』하고 훅 불 때다. 『땅』소리에 놀란 송해천은 얼른 총구를 악한에게 대었다. 그래서 악한은 다소 괴상한 제스처를 쓰면서 넘어졌다. 그러나 사실 총소리는 송해천이가 총구를 저한테 대고 『훅』하고 불었을 때 난 것이다. 그러니까 죽기는 송해천이가 죽어야 하는 것인데 소리난 다음 들이댄 악한이 빈총에 죽었다. 연극을 하다보면 이루 다 얘기할 수 없는 우스운 얘기가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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