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과 취직과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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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졸업을 앞둔 나는 요즘 신문 조·석간을 받기가 무섭게 들치던 문학 면을 뒤로하고 취직 광고란에 첫 눈을 돌리는 습관이 생겼다. 말만 들어 어려운 것으로 알아온 취직난을 직접 당하고 보니 지리 했던 (?) 16년간의 형설의 공이 너무나 힘없이 으스러지는 것 같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됐다는 전보에 기뻐 우시면서 조그만 월급을 줄여 등록금을 마련해 주시길 여덟번, 한층 더 늙어 보이시는 아버님 어머님 얼굴이다. 이젠 그분들께 괴로움만 끼쳐 드리던 딸로서 해 드리고 싶었던 것을, 또 잡수시고 싶으신 것을 사들고 퇴근길에 서고프다.
하지만 오늘도 학교에서 친구들이 모여 앉아 취직 걱정들을 하면서 『얘, 신문 광고에 난 것 배경 없으면 갈 필요도 없대』하고들 말한다. 나는 『그래도 설마…』하며 며칠전 모회사 사원 채용에 응시했었다. 내 힘으로 합격해 보겠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불합격이었다. 믿기가 어려워 몇 번을 되돌아와 확인해 보았다. 창피스러워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데 그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응시 자격에도 미치지 못한 Y라는 친구가 합격이 됐다는게 아닌가.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는 『이 바보야, 사장 「빽」이야. 우리 아빠하고 친구 되시거든』한다. 그게 정말일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에 첫 발을 들여놓을 내가 제일 먼저 배우고 경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늘도 배경 없는 나를 필요로 하는 직장도 있겠지 하고 또 광고란을 들춰본다. <서울 성동구 신당동 41의 l14 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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