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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 성시…과외 교실|고개든 원인과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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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가 실시된 후 한 동안 사라졌던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과외 수업이 학부모들의 과열된 교육열과 무시험 진학 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때문에 요즘 전국적으로 다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원주에서 발생한 우수 교실이 화재로 과외 수업을 하던 어린이 7명이 불길에 휩싸여 숨진 사실은 허영심과 사치심에 날뛰기 시작한 학부모와 안일 위주의 관계 당국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가다듬게 했다.
중학교 진학이 무시험인데도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과외 수업을 시켜야하는 새로운 이유는 무엇인가.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데만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야 하겠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성적 경쟁 의식에 첫째 이유가 움트고 있다. 우등 교실, 수재 교실이란 유혹적인 이름으로 불리는 그룹 지도가 허영심에 불타는 학부모들을 자극, 요즘 주택가에는 5명 내지 10명씩 짝을 지은 어린이들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한방에 모여들고 있다.
서울 시내 답십리동 모 미장원 2층에는 과외 지도 방이 생겨 버젓이 영업 행위를 하고 있어도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않고 있다.
월 1천2백원씩 30명의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이 공부방은 5평짜리 좁은 방에 30명씩 학생들을 넣고 있어 어린이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이곳에 다니는 안 모양은 『우등생이 돼야 한다』는 부모의 말 때문에 방과 후 친구들과 떨어져 공부하러 온다고 못 마땅해 했다.
국민학교 때부터 영어와 수학을 미리 공부시켜 다가올 고교 입시에 대비하게 한다는 것이 둘째 이유가 되고 있다. 그 고교 입시의 치열도가 국민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사립 국민학교 근처 부유층에 번지고 있는 영어 수학 과외 공부는 지난번 교과 개편 때에도 논의된 바 있지만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너무 일찍 가르쳐 놓으면 정작 중학교에 들어가서 권태감을 느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쉽다』면서 이것도 일종의 사치심에서 기인한 것으로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고 보고 있다.
무시험 진학 후 대부분의 중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우열반 편성이 과외 공부의 세째 이유로 등장되고 있다. 학력 차이가 심한 어린이들이 중학교에서 같은 반에 모이게 되었기 때문에 중학교 교사들은 어느 층의 학생들을 상대로 가르쳐야할지 망설이던 끝에 학생들을 우수 반과 열등 반으로 편성했다. 물론 우열반 편성에는 고교 입시를 앞두고 중학교의 명예 의식과 공부 잘하는 학생 학부모들이 지진 아동들 때문에 지장이 있다고 압력을 가한데도 큰 원인이 있다.
이처럼 중학교에서 우열반을 편성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학교 학부모들은 중학교에 들어가 우수반에 끼어야하고, 이것은 곧 고교 입시와도 연결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과외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입시 준비 과외 수업에서 해방됐던 국민학교 학생들은 요즘 다시 과외 수업 장으로 몰리고 중학교 무시험 진학으로 인한 정책도 도로아미타불로 되돌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고교 진학을 앞둔 중학교 학생들은 학원과 일류 학교 교사를 찾아 입시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Y중학교 김모군 등 5명은 세칭 일류교 교사를 모시고 중학교 2년 때부터 과외 수업을 했으나 그 중 한 학생이 학력이 떨어져 학습 진도에 지장을 가져오자 다른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그 학생을 강제로 몰아내는 극성을 부려 동료간에 금이 간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변두리 학교에 있다가 세칭 일류교에 옮긴 K 교사는 이와 같은 바람을 타고 『한 달에 5만원 이상의 부수입이 생긴다』고 즐거운 비명을 털어놓기도 했다. 서울 시내 대부분의 인문계 학원들은 서울시 교위가 행정 지시로 엄금한 고교 입시 반을 버젓이 차려놓고 성시를 이루고 있다.
학원 관계를 맡아보고 있는 한 관계자는 『시교위 당국이 고입 반을 없애기 위해 강제로 소칙 변경을 요구하는 바람에 일부 학원은 할 수 없이 지시에 따르고 있으나 오히려 올해에는 고입 반 양성화를 당국에 건의할 방침』이라면서 인문계 학원의 사활 문제가 고입 반에 걸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과외 수업과 학원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세칭 일류교, 전직교사나 직업적인 학원 강사들이 집중적으로 입시 공부를 시키는 학원은 그야말로 문전 성시를 이루어 학원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험을 치러야 할 정도다.
서울 시내 D학원은 평균 2대1의 높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학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학원에 들어가는데도 뒷거래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처럼 학원의 자리가 비좁기 때문에 무엇인가 사설 학원이 곳곳에서 문을 열고 있다. 서울시 교육위는 지난 한햇 동안 모두 8백62건의 무인가 사실 학원을 단속했는데 그중 문리계 학원이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무인가 사설 학원은 신문 광고를 내는 정도지만 『학원은 종로구에 차려놓고 광고, 연락 전화번호는 영등포로 적어놓는 등 교묘한 방법으로 당국의 단속을 피하고 있다』고 시교위 실무자는 말하고 있다.
시내 J학원은 올해 서울대학교 입시에 30여명을 합격시켰다고 자랑하고 있으며 일부 학원은 대학교 입시 장에 마이크로버스를 동원, 학원 출신 입시 지원자를 나르고 플래카드를 거는 등 선전과 위세를 보이고 있다.
쓸데없는 허영심에 가득 찬 학부모와 부수입에 맛들인 일부 교사와 학교 당국자들이 각각 올바른 자세를 가다듬지 않는 한 학교 정상 교육은 계속 외면 당할 것이다.
『수석의 비결은 복습과 예습뿐입니다. 과외 공부는 한번도 해본 일이 없어요.』 올해 경기 고교 수석 졸업, 대입 예비 고사 수석, 서울대 수석 입학의 3관광 오세정군의 비결은 방향을 잃고 허둥대는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이 명심해둘 말이다. <김영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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