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노동당 '전쟁-반전' 당론 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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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영국 노동당이 토니 블레어 총리의 대(對) 이라크 강경정책에 대한 반전파 의원들의 집단 반발로 1997년 집권 이래 가장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국 하원은 지난 26일 이라크 공격의 필요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에 반대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1백99표, 반대 3백93표로 부결시켰다. 의회가 블레어 총리의 전쟁 강행 방침에 지지를 보낸 것이다.

블레어 총리가 제출한 이라크 무장해제 동의안도 찬성 4백34표, 반대 1백24표로 가결됐다.

그러나 전체 노동당 의원(4백10명)의 30%인 1백22명이 전쟁 반대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블레어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다. 블레어 총리 집권 이후 노동당 의원의 상당수가 정부 정책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레어 총리 아래에서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피터 킬포일 의원도 반전 진영에 가담했다. 그는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다"며 "미 행정부 내의 극단적 강경파들은 수년 전부터 전쟁을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노동당의 소장 반전파 의원들은 "블레어 총리가 평화적 수단을 써보기도 전에 성급하게 전쟁을 추진한다"고 비판했다. 그레이엄 앨런 의원은 "이번 표결은 블레어 총리를 전쟁의 쳇바퀴에서 구해내려는 의회의 진심어린 호소"라고 지적하고 "영국 국민들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라 영국 총리를 지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는 야당인 보수당 의원들의 지지로 하원에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긴 했지만 노동당 내의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분열된 당을 통합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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