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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그나마 관료 출신이 낫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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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두 경우가 있다.

 ㉮ 몇 달간 밤샘작업을 했다. 나름 창의적으로 소요 재원을 추렴해낼 안을 마련했다고 느꼈다. 대통령이 재가했다. 발표 후 거센 반발이 일자 대통령은 원점에서 재검토를 지시했다.

 ㉯ 몇 달간 검토했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꾸렸다. 두 개의 수정안 중 하나가 양심적으로 옳다고 여겼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얼마 뒤 대통령의 뜻이라며 다른 안으로 확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눈치챘겠지만 ㉮는 세제개편안 때 기획재정부, ㉯는 기초연금안의 보건복지부 상황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대통령의 지시를 곧바로 이행했다. 직원들은 입이 댓 발 나왔다는데 그는 군말 한마디 덧붙이지 않았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선택은 달랐다. 언론을 통해 사퇴 의사가 흘러나왔고 여권의 집단적 질책 속에 물러났다.

 사실 100명 중 99명은 현 부총리처럼 처신할 게다. 진 전 장관이 선택한 길은 그릇된 길이고 자멸하는 길이어서다. 이미 “공약 담당자인데 대통령의 약속도 몰랐단 말이냐” “충분히 토론해 결론이 났으면 충실히 이행하는 게 본분 아니냐”며 자질도, “오랜 측근의 배신”이라며 인격도 의심받듯이 말이다.

 진정 의문은 이거다. 남보다 나은 사고력의 소유자일 그가 왜 그리 행동했는가다. 개인적 성향이 그래서? 정치인은 명분을 가지고 움직이는데.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하는 건 잘못이란 그의 주장은 또 뭔가. 그나마 사정을 알 법한 복지 쪽 인사에게 물었다.

 -비난이 쏟아진다.

 “ 진짜 양심의 문제로 여긴다.”

 - 연계가 공약이란 주장도 있다.

 “잘못 안 거다. 8월 말 대통령이 OK 했던 안이 있다. 그게 ( 청와대에 의해) 뒤집힌 거다.”

 그의 말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을 통합 운영하고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 20만원을 주겠다는 것‘뿐’이었다. 삼척동자도 알 듯 그게 불가능하니 대통령직인수위 단계에서 국민연금 미수령자에겐 다 주되 수령자에겐 덜 주자고 정리됐다. 그래도 논란은 남았는데 어떻게 덜 줄지 두고서였다. 소득, 혹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따라 감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고 인수위는 가입기간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복지부가 집중적 검토를 해서 소득 연계 쪽으로 돌아섰다. 진 전 장관이 대통령에게 재가(裁可)받았다고 여긴 방안이다. 결과적으론 오해한 셈이지만 말이다.

 사정을 들으니 의문이 더 꼬리를 물었다. 국정 운영 측면에서다.

 인수위는 권력적인 측면에서 가장 힘이 셀지 모르나 집행 책임은 없는 기구다. 또 한정된 기간 동안 한정된 인력이 일한다. 정책적으로 어설프다는 얘기다. 그곳의 결정이 주무 부처의 6개월 역량 을 압도했단 말인가. 장관은 대통령이 추인했다고 느꼈다는데 대통령과 장관 사이 소통은 문제없는 걸까. 기초연금 수령 방식은 대단히 기술적인 문제인데 청와대가 그런 부분까지 정하는 게 정상인가.

 또 있다. 관료들이 대통령 어록이나 인수위 자료집을 뒤적이는 게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가뜩이나 불량률이 높은 자발적·창의적 업무 능력은 5년간 꺼놓아도 되니 욕먹을 일도 줄 테고. ‘관료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시대가 열리나.

 청와대에도 궁금한 게 있다. 혹여 “관료 출신이 그나마 무난하다”고 판단하는 게 아닌가 . 진 전 장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키는 대로 일할 사람에 대한 기왕의 선호가 더 깊어지는 건 아닌가 말이다. 기우라고? 청와대·정부·공공기관에 이어 여당에서까지 ‘여의도 김기춘’이랄 수 있는 서청원 고문을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니 딱히 부인하기 쉽지 않다.

 진정한 의문은 지금이 청와대가 시킨 대로 일하면 될 시기인가란 점이다. 그리 안온한가.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