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진우의 저구마을 편지] 잘 주무셨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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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연료비를 아끼느라 한 방에 모여 자고 있습니다. 네 식구가 나란히 누우면 그만인 방입니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딸과 2학년 되는 아들 사이가 늘 제 자리입니다. 아이들은 팔베개를 한 채 이야기나 자장가를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지요. 큰 아기, 아내도 덩달아 잠이 들고나면 세상이 모두 잠든 듯합니다.

창을 넘어든 희미한 불빛에 기대어 식구들의 얼굴을 둘러봅니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불을 차며 이리저리 뒹굽니다. 잠버릇이 심한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를 베고 누우면 아내의 다리가 척 걸쳐 옵니다. 딸은 더 깊숙이 아버지의 품을 파고들지요. 잠결에 배시시 웃는 아내와 깔깔 웃는 딸, 뭐라 중얼거리는 아들이 어서 잠들라 재촉합니다.

그 때가 가장 힘든 순간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할 겁니다. 앞으로 어찌 사나, 온갖 상념이 졸린 눈을 붙들고 늘어집니다. 졸음 겨운 대로, 뒤엉킨 식구들의 재촉에 못 이기는 척 잠들면 그뿐. 누구도 아버지가 오래 잠 못 드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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