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제자는 필자|<제4화>명월관(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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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의암 손병희 선생님 옆에 그림자처럼 지켜 서서 손 선생에게 내조를 다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다동기생조합 제1대 향수를 지낸 주옥경 여사가 바로 그 여인이다.
주 여사는 서도출신으로 기명은 산월이었다. 그는 손 선생님의 이름과 함께 길이 기억에 남을만한 우리들의 대 선배다.
내가 13세로 서울에 올라왔을 때 주 선배님은 나보다 한걸음 빨리 서울에 와 있었다. 그때 나이 l9세이었다.
나 어린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따뜻한 손길을 넣어주셨고 험난한 세파를 헤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기동이 되어주셨다.
당시 손병희 선생님께서는 천도교제3대 교주로 교인들에게는 신앙의 중심이 되었고 겨레에게는 앞길을 밝혀주시는 마음 든든한 지도자였다.
주 선배께서 22세쯤 되는 해 손 선생님께서 주 선배를 안으로 부르셨던 것이다. 이후 주 선배께서는 자나깨나 몸과 마음을 오로지 손 선생님에게 바치고 살아오셨다.
그 무렵 천도교에서는 연중 세 차례의 큰 기념행사가 있었다.
음력으로 4월5일은 천도교제1대 교조 최제우(수운)선생께서 하늘로부터 천도를 계시 받은 천일 기념일이었다. 또 8월15일은 제2대교주 최시형(해월)선생이 수운대사로부터 천도교를 전속하신 지일 기념일이었고 12월24일은 제3대 교주 손병희 선생께서 해월선사로부터 교세를 물러 받은 인일 기념일이었었다.
이들 3차례의 기념일이 되면 전국방방곡곡에서 교인들이 구름처럼 서울에 몰려왔고, 천도교본부에서는 지릉 동대문 밖 상춘원(현 금릉위궁자리) 뒤 공터에서 원유회를 벌였다.
이 잔치에는 장안의 유명한 요리점들이 총출동하여 모의점을 내고 저마다 음식솜씨를 자랑했으며 신자들은 아무 곳에 가서 배불리 먹고 즐겼다. 요즘 말하는 「칵테일·파티」같은 것이었다.
잔치에 노래와 춤이 빠질리 없었다. 무대를 꾸며 광대가 나오고, 각권번에서 명기들이 차출되어 춤과 노래로 재주를 겨루었다.
내 생각으로는 이 무렵 서화와 서도에 능했던 주 선배께서 손 선생님의 주목과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손 선생님과 주 선배와는 30년간의 연차가 있었지만 손 선생은 주 선배를 무척 아껴주셨고, 주 선배 역시 손 선생님을 스승처럼 어버이처럼 따르고 존경했다.
주 선배의 말씀에 의하면 같이 지내실 때 한번도 말다툼하신 일이 없었다고 한다.
기미년 한해전해인 1918년에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손 선생님의 우이동 별장인 봉황각과 상춘원, 제동 집에 유달리 많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3월1일이 가까와질 무렵까지도 손 선생님 집 식구들은 전연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손님들이 들어와 밤늦게 돌아갈 때까지 문밖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던 주 선배는 대충 삼일운동의 거사에 대해 눈치채고 있었다.
밤 깊은 안방에서 손병희 선생님께서는 찾아온 손님에게 『해야합니다. 단지 참가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을 뿐』이라고 말씀하시었다고 주 선배는 그때 일을 회상했다.
손병희 선생께서는 거사를 앞두고 천도교 돈을 여러 군데 분산해두신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돈 중의 일부는 은행에 넣어놓았고 일부는 천도교에 그리고 집에도 두셨다고 한다.
손 선생께서 집에 두신 돈은 모두 주선배가 맡았는데 훗날 삼일독립만세가 터진 다음 은행이나 천도교에 맡겼던 돈은 왜놈들에 의해 모두 압수되거나 동결되어 한푼도 못쓰게 되었지만 주 선배에게 보관시켰던 돈은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갑자기 승하하시고 이 소식을 들은 2천만 동포가 모두 슬픔을 금할 수 없었을 때 손병희 선생을 중심으로 한 민족의 지도자들은 자주독립선언준비를 착착 진행해 나갔고, 주 선배는 손병희 선생을 모시고 옆에서 이 역사적인 거사를 눈여겨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고종의 죽음에 대해서는 일본사람들이 음식에 독약을 타서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져있었고, 일부에서는 고종의 시체를 다시 검사해야한다고 울부짖고 있어 일본경찰과 헌병들의 눈초리가 매섭게 번뜩이고 있었다.
때가 때인 만큼 손병희 선생 같은 민족의 지도자주위에는 왜놈들의 감시가 한시도 떠날 날이 없었다. 이처럼 삼엄한 감시를 받으면서 기미독립선언을 준비하느라고 손병희 선생과 다른 지도자들은 가운데 사람을 놓아 연락으로 상의했다.
주 선배는 이때 이들 지도자끼리의 연락을 도맡아 해야했고 거사당일까지 조금도 실수가 없이 일을 해냈으니 그때 손 선생의 주 선배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두터웠으며 주 선배 역시 성심 성의껏 손 선생님을 따랐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간다.
고종의 승하를 슬퍼하는 2천만동포의 울음 속에서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는 도다. 위력의 시대는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는 기미독립선언이 싹트고 있는 줄은 왜놈들도 전연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이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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