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여운 천2백년 불멸의 신라 슬기 에밀레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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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 흔히 에밀레종이라 속칭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신라동종이 금년으로 주성 1천2백주년을 맞이한다. 60갑년으로 따져도 2백번째다. 통일신라가 태평성대를 구가하며 문화가 한껏 무르익은 혜공왕7년 신해(서기771년)에 선왕인 성덕왕의 뜻을 받들어 큰 종을 지어 봉덕사에 바쳤으니 혹은 봉덕사종이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하늘에 전했던 신라석원>
신종은 총고가 3·33m, 구경이 2·27m. 세계적으로도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또 가장 우아하고 소리 역시 우렁차다. 한국의 옛종은 세계의 어디에 내놓아도 비교가 안될이만큼 뛰어난 금속공예미술품이요, 그중에서도 대표되는 것이 바로 성덕대왕신종.
긴 역사의 풍서에 시달렸음에도 이 종에는 한오리의 흠조차 없다. 짙푸른 동녹의 깊은 속에서 울리는 신운은 들을수록 긴 여운이 은은하게 퍼진다. 그 의젓하고 훤칠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거기 아로새긴 비천의 여린 천의자락과 찬란한 영낙이 일진바람에 하늘하늘 나부낀다.
허공에 둥실떠서, 연화좌위에 사뿐 꿇어앉은 천인은 서운처럼 감도는 보상화 꽃향기를 흩뿌리는 것일까.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그 꽃다운 비천은 법계의 기쁨을 불공으로 아뢰는 것이리라.
『무릇 도는 형상으로써 능히 볼수없고 그 근본에 가득찬 울림도 무한한 진리를 빌어 비로소 들을 수 있다니...』 종신에 새긴 명문의 첫 귀절이다.
일찌기 신라사람들은 불력으로 나라를 수호한다고 믿었고, 종성이 그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해주기를 기원했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경덕왕은 현존 신종의 4배나 되는 대종을 만들어 황룡사에 바친바있고 또다시 12만근의 황동을 가지고 종을 짓다 못마치니 그의 아들 혜공왕이 이를 완성시킨 것이다.
50만근에 달하는 동으로 지었다는 황룡사 대종은 그후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이무렵 신라종은 모두 7구가 유존해 그 슬기로운 솜씨를 오늘에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중 넷은 일본에 흘러나갔고 나머지 셋만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데 그나마도 근년 실상사에 출토한 것은 절반이상이 불에 녹아버린 파종이다.

<백여고종중 일본에 40구나>
신라종의 가장 오랜것은 성덕대왕 신종보다 44년 앞서는 상원사동종(강원도 평창). 서기 725년에 주조된 총고 1백67cm, 구경 91cm의 중종으로 물론 국보(36호)로 지정돼 있다.
현재 중요문화재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동정은 모두 11구. 2구의 신라종이외에 수원 용주사법종(국보102호·고려), 부안내소사동종(보물277호·고려), 해남 대흥사동종(보물88호·고려), 서울 보신각종(보물2호·이조), 강화 동종(보물11호·이조), 공주 갑사동종(보물478호·이조), 배양낙산사동종(보물479호·이조), 양주 봉선사동종(국보397호·이조) 및 송나라의 동종인 강화 전등사법종(보물393호)이 지정돼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의 옛 종이라야 모두 1백여구를 헤아리는 정도. 그럼에도 40여구는 이미 일본에 가있고 심지어 구미박물관에서 빛을 받고있는 것도 있다. 특히 일본은 임진난때 유독 우리나라의 종을 탐해 훔쳐가기에 혈안이 됐었고, 더러는 한일합방을 전후하여 빼돌려 갔다.
양평 용문산 상원사의 신라종은 반세기 전에 대판에서 모조품을 만들어다 바꿔치기까지 했으니 지금 서울 조계사에 있는 것이 그것이다. 더구나 2차대전 말기에는 전국사찰로부터 허다한 종을 강제로 공출, 녹여서 무기를 제조하지 않았는가.
이같이 일본이 우리나라 고종을 탐하는 이유는 그만큼 훌륭한 미술품이요, 또 그들의 기술이 미칠 수 없는 슬기로운 비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의 고종은 지금의 교회종과 같은 철모형이요, 중국이나 만몽의 것도 종신에 다소 조각을 했을뿐 별로 다른바가 없다. 일본은 일찍이 우리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지만 결국 모방에 그쳤을뿐, 한국종의 형태미와 음향감을 다 따르지 못한 것이다.
한국 고종의 특징은 형태미와 청각미가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 있다. 삼국시대내지 통일신라시대의 것은 본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만 음관·용인는 물론 상하대와 유곽의 문양 및 비천 혹은 불상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 나름의 독특한 창조성과 심미안으로 지어놨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특징있고 뛰어난 종을 자랑케 된 것이다.

<고려·이조거쳐 형태변모>
그러나 신라종이 훤칠한 조화미와 맑고 우렁찬 소리를 가졌음에 비하여 고려를 거쳐 이조에 내려오면 그 짜인 구식은 흐트러지고 키가 몸탁해 왜소해지며, 다만 의식도구로서의 음향에만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종의 신비함은 과연 무엇일까. 신라종은 어떠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지녔고 종성에 있어 비법이 없지 않았으리라. 그건 고사하고 현존품의 수와 소재조차 모두 확인돼 있지않은 실정이 아닌가. 그래서 고고미술관계학자들은 성덕대왕신종 1천2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최근 한국동경연구회를 발족하여 이 방면의 종합적인 조사·연구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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