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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임세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여객선 질자호 침몰의 원인을 잠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배를 들이받은 삼행호를 주목하자. 60t의 삼행호는 해운국의 신고도 없이 운항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선장아닌 갑판장의 조종으로 항해중이었다.
정원을 초과하고 남은 만선의 질자호는 좁은 물목에서 이배를 만났다. 황급히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그만큼 삼행호는 눈을 감고 질주를 했던 모양이다. 가뜩이나 힘겨운 형편에 질자호는 기우뚱 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미 배는 늦고 말았다. 기관실엔 구멍이 뚫리고 그배는 불과 수분만에 가라앉아 버렸다.
문제는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 같지 않다. 질자호는 적어도 인명존중의 조건을 충분히 갖추어야할 여객선이다. 그러나 선령이 38세나 된 낡은 목선이었다.
충돌사고에서 켠디어 낼만한 체격이 못된다. 그뿐아니라 몸로 무거웠다. 정원 64명, 승무원 6명의 이배엔 무려 90여명이 타고 있었다.
바로 3백 수십명의 인명을 앗아간 남영호 침몰사고가 끔찍하고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불과 20여일 전의 일이었다. 더우기 충격적인 사실은 그 원초적인 원인이 두 사고의 경우가 똑같다는 점이다. 어느 경우나 안전을 위한 수칙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대리선장이 조종을 맡았던 남영호, 선장없이 갑판장이 핸들을 잡았던 삼행호. 정원의 문제만해도 그렇다. 남영호도 출발전의 체크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질자호의 경우도 어느 한곳에서도 주의깊게 임검된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몇명이 승선했는지 조차 분명치 않다. 명단이 없었던 것은 더 이를데 없다.
남영호의 그 가공할 사고는 결국 아무런 자극제도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선박들은 그 이후에도 별로 개선된 기미없이 멋대로 운항을 계속한 것이다. 똑같은 원인에 의해 똑같은 사고가 벌어진 것은 누구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무자극·무책임·무감동의 세태가 실로 무섭다.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을 꽝꽝 담아 잠그고 사는 것 같다. 비단 선박업자들 뿐인가. 행정당국자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사고의 원천적인 것은 여기에 있는것도 같다. 그들은 그처럼 엄청난 사고를 겪고도, 무자극·무책임을 고수(?)한 것이나 아닌지-.
이 감동조차 없는 세상은 한결 살벌한 느낌이다. 관리나 모든 직업인이나, 시민들의 감정을 한결같이 마비시킨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바로 인간부재의 사고방식, 그것이다. 지금 개발도상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그 인간존중의 사상을 되찾는 것이 제일 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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