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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가전왕을 만든 건 한국인 DNA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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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카자흐스탄 ‘가전(家電) 왕’ 에두아르드 김(48·사진)은 고려인 3세다. 그는 카자흐스탄 가전 유통시장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유통업체 테크노돔의 회장이다. 보따리상에서 시작해 카자흐스탄 최대 가전제품 유통업체의 회장이 됐다.

 “반-갑-습-니-다.”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인 알마티시에 위치한 테크노돔의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김 회장은 기자에게 어눌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한국말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어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는 “모국어는 잊었지만 전통과 근면·성실함이라는 한국인의 문화는 내 몸속에 남아 있다”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김 회장은 1987년 알마티 정치대학을 졸업했다. 국립과학원 지질학연구소가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9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 공산권 붕괴라는 정치 급변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90년 직장을 그만둔 그는 무역회사를 차렸다. 집을 팔아 마련한 2만 달러로 터키에서 수입한 초콜릿을 팔았지만 극심한 인플레로 큰 손해만 보고 사업을 접었다. 할 수 없이 카자흐스탄 양대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손꼽히는 술팍이란 회사에 들어가 판매원 생활을 시작했다. 특유의 근면과 성실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김 회장은 2001년 테크노돔을 설립하면서 독립을 선언했다. 처음 직원 20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12년 만에 22개 도시에 50여 개 점포, 4500명 직원을 보유한 카자흐스탄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우뚝 섰다.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20%가 개인 능력이라면 80%는 고려인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삼성·LG·대우 등 한국기업들이 카자흐스탄에 대거 진출하면서 고려인인 나와 인연을 맺어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의 성공적 삶은 올해로 중앙아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은 고려인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맞닿아 있다. 김 회장 가족의 이주 역사는 할아버지 때 시작됐다. 1900년대 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한 조부는 1935년 우수리스크에서 김 회장의 아버지를 낳았다. 그러나 2년 후인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이 시작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조부는 당시 세 살배기였던 김 회장의 아버지를 품에 안고 낯선 땅, 중앙아시아로 향했다.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현지에 차츰 뿌리를 내렸고 김 회장의 아버지는 체첸 캅카스 지역에서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김 회장의 어머니 역시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온 고려인이었다.

 부모 모두 모스크바대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고려인이란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인생 행로가 평탄치 않았다. 외가가 있던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어릴 적부터 타지키스탄, 캅카스 지역, 우즈베키스탄 알마티 등을 떠돌아야 했다. 김 회장 스스로 “그동안 노마드(Nomad·유목민) 같은 삶을 살아왔다”고 기억할 정도다.

 낯선 환경과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뿌리를 내려온 고려인들과 김 회장. 그는 “석유·가스·철강·구리 등 자원 분야에서 한국과 카자흐스탄은 협력할 부분이 많은데 인재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발전한 과학·기술 분야의 지식과 노하우를 젊은 고려인들에게 교육, 지원해 주면 엄청난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미국·중국·일본·러시아·카자흐스탄·독일)=장세정(팀장), 강인식·이소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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