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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폭동 계기 "정치력 키우자" … 의원·단체장 도전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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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LA 한인축제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부터 나흘간 미국 LA 한인타운에서 열렸다. 축제 사흘째인 28일 LA 올림픽가에서 열린 퍼레이드에는 미국 전역에서 온 100여 개 팀이 참가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동포 여성과 어린이들이 행진하고 있다. [LA=뉴시스]

동포사회를 탄탄한 네트워크로 엮어 주류 사회에 들어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1903년 8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한 지 올해로 미국 이민 110주년. 그사이 재미 한인사회가 217만 명의 거대 디아스포라(Diaspora·이산) 집단을 형성한 만큼 그에 걸맞은 목소리를 내자는 취지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재미 한인 정치조직인 미주한인협의회(CKA)의 행사가 지난 8월 1일 백악관에서 열렸다. CKA는 한인사회의 정치력 신장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동포 1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CKA는 미 행정부의 주요 인사로부터 한·미 관계, 의료보험 개혁 등 한인사회의 관심사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시드니 세일러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크리스 강 대통령 선임보좌관, 하워드 고 보건부 차관보 등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 제기된 한인들의 의견은 백악관과 미 행정부에 전달됐다.

 전날 CKA는 미 국회의사당 인근 호텔에서 하비어 베세란(민주당) 하원의원총회 의장 등 연방 하원의원 7명, 행정부 관계자 등을 초청해 ‘한인 동포사회+의회지도자 행사’를 열었다. 샘 윤 CKA 회장(보스턴 시의원)은 “한인 사회의 현안들을 미 의회 지도자들과 함께 논의해 미주 한인들의 정치력을 키우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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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미대사관 강도호 총영사도 “CKA 행사는 미국 정치권에 한인 공동체의 존재감을 인식시킨 중요한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아시아계 미국인 이민 집단 중에서 한국계의 정계 진출은 아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계는 현직 연방 상원과 하원의원, 주지사, 장관급 연방 고위직에 한 명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계는 상원의원까지 배출했고, 인도계는 주지사가 2명이나 된다.

 한인사회가 정치력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은 1992년 4월에 발생한 LA 폭동 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흑인들의 방화·약탈 등으로 55명이 숨졌고, 피해 업소 1만여 개 가운데 한인업소가 2800여 개였다. 그러나 미국 경찰은 백인 밀집 지역을 우선적으로 보호했다. 워싱턴 한인회장을 지낸 최정범 IL크리에이션 푸드 시스템 회장은 “1세대는 먹고살기 바빠서 정치력 신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나 LA 폭동 이후 한인들이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회고했다.

 LA 폭동 이후 이민 1.5세대와 2세대들의 정치권 참여 움직임이 이어졌다. 뉴욕 인근의 뉴저지주 저지시티. 2만 명의 유권자 중에서 한인은 6명뿐이고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절대다수인 이곳에서 현지에서 32년간 잡화점을 운영해 온 마이클 윤(윤여태·59)이 6월 아일랜드계 현직 주 하원의원을 꺾고 시의원에 당선됐다. 마이클 윤 의원을 포함해 미셸 박 스틸(58)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회 부위원장, 마크 김(47)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한인 첫 뉴욕시장을 꿈꾸는 론 김(34) 뉴욕주 하원의원 등 한인사회의 차세대 정치인은 10여 명으로 늘었다.

 차세대 정치인들의 성장배경엔 1세대들의 후원을 빼놓을 수 없다. 하와이에 최초의 한인 자본 은행을 설립한 김창원(85) 오하나 퍼시픽 은행 이사장, 미주한인 정치 콘퍼런스와 차세대 리더십 포럼을 개최해 온 밝은미래재단 홍명기(79) 회장, CKA에 정치적 후원을 해 온 앨라이드 테크놀로지 이덕선(74) 명예회장 등이 대표적 후원자다.

 이덕선 회장은 “개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중소기업을 일굴 수는 있지만 큰 기업으로 키우려면 정치적 배경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민 생활 47년의 경험으로 절감했다”며 “한인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배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이클 윤 의원도 “미국은 여러 부족이 모여 사는 집단사회나 다름없다”며 “강한 부족 출신이 추장이 되듯 강한 이민사회가 워싱턴 DC를 주도한다”고 강조했다. “중동의 이스라엘이 강해서 미국 정치권이 이스라엘의 이익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유대인이 강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말도 했다.

◆특별취재팀(미국·중국·일본·러시아·카자흐스탄·독일)=장세정(팀장), 강인식·이소아·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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