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고통 분담 없는 노·사·정 기적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이하 노사정위) 본회의에 참석했다. 10년 만의 일이다. 이날 박 대통령의 뒤로 ‘고용률 70%라 쓰고, 사회적 대화라 읽자’는 플래카드가 눈길을 끌었다. 이미 박 대통령은 “노사정위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고용률을 올리려면 정부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음을 인식한 것이다. 고용률 70%는 노사 간의 고통분담과 양보 없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목표다.

 현재 노사 간에는 휘발성 강한 현안이 널려 있다. 통상임금 문제, 60세 정년 연장, 초과근로시간 축소, 시간제일자리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이 모두 진통 중이다. 하나씩 뜯어보면 어느 한쪽의 양보를 선뜻 기대하기 어려운 예민한 사안이다. 하지만 여러 현안을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고 주고 받는 식의 ‘패키지딜’을 한다면 대타협이 이뤄질 수도 있다. 노사정위의 역할과 존재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난 10여 년간 노사정위는 사실상 뇌사상태로 방치돼 왔다. 민주노총은 1999년 탈퇴한 이후 등을 돌렸으며, 한국노총도 일부 의제별 회의에는 불참하는 등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파행이 지속되면 노사정위는 사회적 대화기구로서 기능을 할 수 없다. 노사 간에 툭하면 격렬한 대결과 정치 문제로 비화되는 불행이 반복될 뿐이다.

 노사정의 성공신화라면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과 2003년 독일의 하르츠 개혁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런 기적들은 부럽기 그지없지만 따라 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독일 대기업 노조들은 동유럽으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회사를 설득해 10년간 임금을 동결했다.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절반 이하로 뚝 깎고, 연금수령 연령은 65세에서 67세로 올리는 데도 동의했다. 냉철한 현실인식과 성숙한 국민의식, 뼈를 깎는 고통분담이 없다면 선진국들의 노사정 대타협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우리도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대기업들은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들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고,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여성근로자들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언제 ‘한국병(病)’이 나타날지 모를 지경이다. 이런 악순환에 제동을 걸려면 노사정이 위기의식을 갖고 진지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단순히 대화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노사정위가 가장 중요한 사회적 교섭기구로 자리 잡아야 한다.

 선진국들의 노사정 대타협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뛰어난 정치적 리더십이다. 슈뢰더 독일 총리는 정치생명을 걸었다. 그 결과 하르츠 개혁과 ‘어젠다 2010’은 성공했지만 그 자신은 정권을 잃었다. 루드 루버스도 13년간 최장수 총리를 역임하면서 바세나르 협약으로 네덜란드를 강소국으로 올려놓았고, 반대편에서 노동총연맹을 이끈 빔 콕 노총 위원장은 그 다음 총리로 장수했다. 우리가 “노사정위를 최대한 뒷받침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리더십의 뒷받침 없이는 노사정 대타협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