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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에도 품격이 있다 … 2020 도쿄 올림픽 성숙한 글로벌리즘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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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추석 연휴 초입이던 지난 17일은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최 25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서울 올림픽이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해준 바탕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드물 것이다. ‘외국’ 소리만 들으면 주눅 들었던 한국인이 자신감을 얻고 한국을 국제사회에 알렸으니 말이다. 그런 행사가 4반세기를 맞았는데 국가적인 기념 행사 하나 없이 지나친 게 못내 아쉽다.

 물론 올림픽은 국제 스포츠 행사지만 국민 자신감 고취와 국가 브랜드 향상, 그리고 경제 성장의 견인차이기도 하다. 64년 도쿄 올림픽과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그랬지 않은가. 지난해 사상 네 번째 올림픽을 치른 런던은 어떤가. 이달 초 현장을 방문했다가 생생한 경험을 했다. 토요일인 지난 7일 저녁 도심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프롬스 인 더 파크’ 행사에 참가했다. 1895년 시작된 118년 전통의 여름 음악축제인 프롬스의 마지막 날 공연이다. 1부는 런던필하모닉의 하이드파크 야외 공연과 BBC오케스트라의 로열앨버트홀 실내연주 등이 각각 열렸다. 2부는 서로 연결해 대형 화면으로 동시에 공연했는데 애국심을 고취하는 곡 위주였다.

 특이한 것은 수많은 관객이 영국 국기를 들고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면서 음악을 즐겼다는 점이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깃발에 아일랜드 국기까지 흔들었다. 노르웨이·스페인·독일·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국기도 함께 보였다. 특히 2부에서 4만 명이 넘는 하이드파크 관객이 동시에 깃발을 흔들며 ‘지배하라, 브리타니아’를 비롯한 애국주의 노래와 국가인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를 함께 부르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주변 영국인들에게 물어봤더니 지난해 올림픽 이후 완전히 이런 애국주의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만 국수주의에 빠지지 않고 외국 국기를 흔드는 글로벌 이웃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 스마트폰에서 ‘도쿄, 2020년 여름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이란 속보가 떴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본이 이를 계기로 애국주의가 확산하면서 자칫 배타적 국수주의로 굴절되지는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 유치 직후 일본 내에서 혐한 시위가 재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22일 도쿄 신주쿠 공원에선 이에 반대하는 ‘도쿄 대행진’ 행사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든 ‘친하게 지내요’라고 적힌 피켓 화면을 보며 희망의 싹을 느꼈다. 일본과 한국은 어차피 친하게 지내야 하는, 그리고 지낼 수밖에 없는 숙명의 이웃이 아닌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성숙한 글로벌리즘을 보고 싶다.

 아울러 이제 한국도 제2의 서울 올림픽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 국민의 자신감을 복돋울 수 있도록 말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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