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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김찬삼 여행기<서 사모아군도서 제6신>|추장일가 배웅 받으며 다음 여로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추장 집에서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떠날 때 추장에게『제가 받은 환대는 우리 나라에 대한 우애의 표시로서 필이 가슴에 아로새기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더니 그는『누추한 집에서 아무런 대접도 해드리지 못하여 도리어 죄송스럽습니다. 고국에 돌아가시거든 편지를 자주 보내주시오』한다. 이 추장 집에는 낮선 나그네가 떠난다고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데 모두들 이별을 아쉬워했다.
이 장면은 저 이름 높은「셀 리」의 시「별리」며「하이든」고별교향곡을 방불케 할만한 이국인끼리의 아름다운 이별의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천사같이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이「사모아」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떠날 때 특히 추장 딸의 눈에는 한 가닥의 애수가 깃들여있었다.
세계의자연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아름답다는 인간예찬을 읊조리며 나는 바닷가를 달리고 있었다. 어떤 마을 근처에 이르니「사이드카」처럼 옆에 통나무를 덧 댄「커누」를 타고 산호초가 비치는 파란 천해에 나가서 원주민들이 낚시질을 하는가 하면 창을 던지기도 하고 그물을 던져서 고기를 잡는 광경이 멀리 보인다. 그리고 섬 남쪽에 있는「레파가」에는 열대의 전형적인 해수욕장이 있는데 이곳은『낙원에 돌아오다』란 명 우「게리·쿠퍼」주연의 영화를 찍은 곳이라고 한다. 과연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이처럼 경치 좋은 바닷가에서 눈에 거슬리는 것은 파도가 치는 물가에 기둥을 박고 길다란 나무로 뻗치게 하여 변소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사모아」사람은 섬에다 변소를 마련하지 않고 이렇게 바다에다 짓는가 보다. 몇 백년이고 지냈을 이 바닷가는 인분으로 굉장히 더러울 것 같은데 늘 바닷물에 씻기기 때문인지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이것이야말로「에덴」의 변소랄까, 문명인의 수세식 변소보다 몇 갑절 뛰어난 이른바 해수 식 변소였다.
나도 신세를 지려고 나무로 세 운이 변소에 올라갔다. 모르긴 해도 어류들에겐 사람의 변이 좋은 먹이가 되는 듯 파란 물 속에는 수많은 열대어들이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이런데서 용변을 하는 것이 왜 그런지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이번 3차 세계여행을 떠날 때 고국에서 어떤 사람이「사모아」군도에 가면 진기한 결혼풍속을 볼 것이라고 했었다. 즉 첫날밤 신부가 신랑이 아닌 타향사람과 잠자리를 같이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여행하는 동안은 결혼식이 없어 직접 이런 사실을 보지는 못했으나 많은 옛일을 두루 아는 늙은이인 어떤 고 노에게 물어보았더니 그전에는 객지에서 귀빈이 오면 동네 무당과 함께 생활하던 처녀들이 고 노의 지시에 따라 손님의 시중을 들어주는 일은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어떤 벽지에 가면 먼 길손이 찾아왔을 때 그의 뜻에 따라 젊은 과부가 동침해주는 풍습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일 그런 곳을 찾아가면 꽃 같은 젊은 과부가 반길는지 모르나 이런 일을 윤리 상으로 실연해 드리지 못하여 흥미 있는 읽을거리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사모아」섬은 집 한 채에 교회가 서 있다고 할만큼 종교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인지 자연은 물론이며 저 하늘빛까지도 은은한 종소리로 영 화된 듯하다. 이 자그만 섬은 독립국가로서 자부하는 만큼 이젠 새로운 종교·윤리의 국가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여기 머무르는 동안 국제보건기구관계로 일하고 있는 우리 나라 의사 한 분(이씨)을 만났다. 그는 몇 년 전에 의사 없는 이 섬에 와서 병리학을 연구하며 의료사업을 하고 있는 독지가다. 여행 중 내가본 우리 나라에 대한 신문기사는 거의 어지러운 정국이며 수재들의 가슴아픈 내용 등이었는데 이런 곳에 우리 나라 의사가 와서 봉사하고 있는 것을 보니 기 쁘 기 그지 없었다.
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보니 한국을 고스란히 옮겨 심은 듯 방안은 자개로 된 의장이 있는가하면 집 뜰에는 우리 나라에서 종자를 갖다가 심었다는 우거진 호박덩굴·배추·파들이 보였다. 향수를 달래고자 이렇게 한국적인「무드」를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 부부는 함께 김을 매며 단란하게 사는데, 밭에서 갓 따온 호박으로 전을 부쳐주고 우리 나라에서 보내왔다는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오랜만에 우리 나라 음식을 먹으며 우리말을 뇌까려 보았다.
※다음은 미국 영 동「사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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