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 빌려 저금리 전환? … 대출 사기 주의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수년간 연 이자 20~30%대의 카드빚으로 생활비를 융통해온 A씨. 돌려막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6개 금융회사에 총 5000만원의 빚을 진 신세가 됐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어느 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갈아타게 해드립니다’는 글을 남긴 한 시중은행 대출중개인에게 연락을 했다. 대출중개인은 “내 친구에게서 돈을 꾸어줄 테니 우선 대출금을 갚아라”라며 “빚을 갚으면 신용등급이 오를 테니 저금리로 다시 은행 돈을 빌려 3일 안에 나와 친구에게 원금의 10%(500만원)를 수수료로 달라”고 했다.

 A씨는 금융회사 대출금을 갚은 뒤 신용등급이 오르자 연 13%의 은행 대출 6500만원을 받아 대출중개인에게 빌린 돈 5000만원과 수수료 500만원을 건넸다. 하지만 돈을 꾼 지 3일 만에 수수료 500만원을 준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금감원 조사 결과 대출중개인이 사채업자와 짜고 벌인 속칭 ‘통대환대출’이라는 신종 불법사채였다. 금감원은 23일 통대환대출에 대한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금융당국의 집중 단속에도 불법사채 피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불법사채 피해신고는 지난해 3분기 2616건에서 올해 1분기 437건까지 줄었지만 2분기에는 961건으로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정부 합동으로 집중단속을 하고 있지만 사채업자들이 단속망을 피해 불법 변종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 피해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서는 정부가 국민행복기금·바꿔드림론과 같은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을 강화한 것을 악용한 사기가 눈에 띈다. 상반기에는 저신용자에게 은행연합회 직원을 사칭해 “국민행복기금에서 돈을 빌려주겠다”며 연 30%대의 고금리 대출 마케팅을 한 대부업체들이 잇따라 적발됐다. 국민행복기금에 신청을 유도해 자기 돈을 갚도록 하는 사채업자 사례가 거론되는가 하면 국민행복기금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개인회생 신청을 하게 한 뒤 수수료를 챙기려는 대행업체도 있었다.

 최근 기승을 부리는 통대환대출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바꿔드림론을 연상시키는 방법을 통해 채무자를 현혹하고 있다. 바꿔드림론은 캠코의 신용회복기금을 재원으로 연 20~30%대의 저축은행·대부업체 고금리 대출을 연 10%대의 시중은행 저금리대출로 바꿔주는 사업이다. 캠코 관계자는 “바꿔드림론은 정부 사업이기 때문에 채무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대출 전환을 유도하지 않는다”며 “일단 수수료를 요구하면 사채업자나 브로커로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대환대출의 수수료가 3일간 10%라는 것은 함정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얼핏 괜찮은 제안인 듯하지만 자칫 빌린 돈과 수수료를 못 갚으면 사채 이자가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근 은행들은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다중채무 이력이 있으면 저금리의 대출을 다시 받기가 쉽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통대환대출과 같은 사채를 써서 대출금을 갚았다가 은행으로부터 재대출을 거부당하면 사채의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채업자들이 곧바로 엄청난 연체이자를 물려 결국 1년이 지나면 원금의 5~10배가 되는 이자가 쌓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