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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차별의 일촌 변사선…하루를 더 산다|김찬삼 여행기<토악군도에서 제 8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사모아」로 향하여 「통가」에서 여객기가 높이 뜨자, 섬을 둘러싼 경치가 아름다운 누형처럼 내려다보인다. 그 안엔 얕은 바다를 이룬 아늑한 초호가 더욱 눈을 끈다. 지금도 여전히 산호가 자라고 있으니까 부초의 모양이 얼마 뒤에는 또 바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곳에는 죽은 산호가 눈부신 백사장을 이룬 곳도 있다.
「통가」군도는 대체로 북북동에서 남남서를 향해 두 줄기로 흐른 수다한 섬들이다. 오른쪽 섬들은 산호초로 이루어졌고, 섬과 섬 사이는 천해로 이어졌다. 그리고 오른쪽 해저 면에는 급경사를 이루어 너비24∼48㎞, 남북길이2천4백㎞, 깊이1만2천m 의「통가」해구가 가로놓여 있다. 산호초 군도의 왼쪽은 주로 해저화산이 뿜어낸 크고 작은 화산도가 있는데 이곳을 환태평양 화산대라고 한다. 2천m 상공에서 내려다보니「토푸아」섬의 삼림으로 뒤덮인 화산의 화구 속에 물이 괴어 있으며 화산 벽에서는 수증기가 오르고 있다. 참 지구 아닌 이 해구는 멋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난다. 얼마나 다양한 세계인가. 바로 이 화산 위쪽에는 높이 3천3백80피트의 전형적인 원추형 휴화산「카오」화산도가 있다.
이 근처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화산이 요술을 부리는 곳이다. 과거 80년 동안 세 번이나 바다 위에 나타났다가 물 속으로 가라앉은 섬이 있다. 그런가 하면 1928년 폭발할 때 김이 3·6㎞,높이 2백m의 섬이 되었다가 1938년에는 다시 폭발하여 길이 2·4㎞,높이10m로 줄어들었으며 그 뒤 폭발이 계속되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지금도 화산작용이 있어 간조 때에는 훅 연기가 뿜는 것을 볼 수 있다고 기장이 말해준다. 지구는 아직도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파란곡절이 많은 역사적인 이 바다의 웅대한 조감도를 내려다보며 시적인 상상을 하노라니 이렇듯 훌륭한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스러운가를 느낀다.
인공위성에서 보는 지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드높은 하늘에서 보는 이「통가」군도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 이「통가」 군도인 l백50여 개의 섬들 가운데 사람들이 사는 섬은 몇십밖에 안되며 무인도들이 많은데 파도만 희롱할 뿐 아무도 더럽히지 않은 성처녀와도 같은 신성한 섬들이 내려다보인다. 파란바다에 점점이 자리잡은 푸른 섬들은 치마를 고이 입고 도사리고 앉은 여인과도 같다.
여객기는「통가」 군도를 따라 북북동 쪽으로 날고 있는데, 느닷없이 「마이크」소리가 들린다.『여러분, 지금 일부 변사 선을 넘고 있읍니다. 다음나라「사모아」와 시차는 없읍니다만 일차는 있습니다. 오늘 8월3일(월) 음 8월2일(일)로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한다. 이 말을 들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며, 과거로 역행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어쩌면「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속의 시간 속에 뛰어든 것 같다.
「통가」가 1백75도, 서「사모아」가 1백72도, 모두 서경1백80도 안에 들어 있는데 일차가 있다. 일부 변경 선은「그리니치」천문축의 정반대 되는 1백80도로서 거의 태평양의 중간이지만 도서행정관계로 인위적으로 일부 변사선 바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사모아」에 곧 이른다는 기쁨보다도 「통가」에 나의 일부를 놓고 온 듯한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웬일일까. 마음으로 반기는「통가」 사람들의 우정에 그만 내 자신이 용해된 때문인지도 모른다. 「통가」왕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나에게 자비와도 같이 큰사랑을 베풀어준「통가」 사림들이여 『아듀!』
※다음 회부터 서 「사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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