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침침한 농촌 분들께 '밝은 빛' 찾아드립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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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경남 창원시 죽곡마을 주민들의 시력을 체크하고 있는 가야대 안경광학과 학생들. 폭우가 내렸지만 주민 수십여 명이 봉사 현장을 찾아왔다.

경남 창원시 죽곡마을. 주민의 70%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생활하던 평범한 어촌이었다. 하지만 조선소가 들어온 뒤 마을 주거환경이 악화됐다. 10여 년 전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보상·이주 시기가 늦춰지면서 사람들은 하나둘 보금자리를 떠났다. 지금은 120여 가구 260명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14일 오전 STX조선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 마을에 창원시재능기부협의회와 가야대 안경광학과 학생 등 40여 명이 모였다. 지역 노인들에게 다시 ‘빛을 찾아주기’ 위해서란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마을 노인들을 위해 무료로 돋보기를 맞춰줬다.

 “학생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나이 많은 분들과 소통하며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어른들 깍듯하게 모시면서 제 아들이 열심히 재능기부 하는 걸 보면 복권 당첨된 것보다 기분이 더 좋습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신이기(54·사진) 창원시재능기부협의회장의 얘기다. 신 회장은 2011년부터 경남 일대 낙후된 농어촌 지역을 돌며 꾸준히 재능기부를 해오고 있다. 재능기부 취지를 살리기 위해 생활환경개선, 마을홍보, 어학, 건축 등 7개 분야 전문분과도 만들었다고 한다. 돋보기 만들어주기 재능기부는 가야대 안경광학과에 재학 중인 아들 해문(24)씨 아이디어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 이번이 세 번째다.

 학생들은 안경 전문가 못지않게 꼼꼼하게 대상자들의 상태를 챙긴다. 안경세척 같이 간단한 서비스도 해준다. 실제 이날 돋보기를 맞춘 마을 주민 정모(72)씨는 “젊은 학생들이 안경점보다 더 꼼꼼하게 시력 체크도 해주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할 수 있어 좋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참가학생들도 얻는 게 많다고 한다. 김주연(22·여)씨는 “우리도 한창 배우는 중이라 이런 재능기부를 하면 경험이 쌓여서 좋다. 특히 돋보기는 피검자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소유 중인 땅을 농지로 개발하고 농산물 직거래 사업 등을 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그는 “스위스 등에서는 지역 협동조합이 정부 정책보다 앞서나가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정부나 농어촌공사 지원금 없이 재능기부를 자리 잡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재능기부는 ‘스마일재능뱅크’(www.smilebank.kr)를 통해 진행됐다.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운영하는 재능기부 매칭 프로그램 스마일재능뱅크를 통해 현재 약 3만5000명의 기부자들이 1144개 농·어촌 마을에서 재능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창원=글·사진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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